역시 김혼비!(라고 하면 함께 책을 쓴 박태하에게 미안해야 하나? 김혼비는 알고 있었으나 박태하는 알고 있지 못했으니 박태하 앞에는 ’역시‘라는 부사는 쓸 수가 없으니 이해바란다. 물론 김혼비를 알고 있다는 것도, 그녀의 책을 읽었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제목은 혹시 전국의 축제에 대한 소개서인가 싶지만, 제목 아래에 박힌 그녀의(그리고 그의) 이름은 당연히 그것이 아닐 거란 걸 확신케 한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에 실린 <랍스터를 생각해 봐>라는 글에서 미국 어느 지역의 랍스터 축제에 대해 집요하게 묘사했다. 한발짝 떨어진 입장에서 좀처럼 감정이입되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행사를 관찰하고, 궁리하고, 분석하고, 해체한 후 다시 조립했다. 김혼비와 박태하의 글을 읽는 초반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곧바로 비교 대상에서 지워버렸다. 일단은 우리 K-축제들의 ‘K스러움’은 미국의 축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그건 TV나 영화를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냉철함이 아니었다. 김혼비, 박태하 쌍(그렇다. 그들은 부부다)이 가진 약간의 삐딱함과 그것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상당히 잘 어울리는 약간의 온정스러움은 ’K스러움‘을 맘껏 발산해내는 전국의 열두 축제를 만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 이들은 지방의 축제들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우선은 허전함이다.
“사실 영산포터미널에서 축제장으로 오는 길에 한바탕 진한 흘씨년스러움을 느꼈더랬다. 곳곳의 폐가와 폐건물, 페인트칠이 벗겨지다 못해 통째로 뜯겨 나간 것 같은 담자들... 어느 담에는 청사초롱을 든 홍어 캐릭터가 활짝 웃고 있었지만 청사초롱도 홍어의 미소도 거리를 밝게 비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럴싸하게 ? 전남 나주 영산포홍어축제>, 67쪽)
지방 축제가 열리는 현장에서, 그리고 그 바로 곁에서 쇠락해가는 도시, 아니 마을을 만난다. 어떻게든 우리 지방을 살려내보고자 하는 바램이나, 혹은 남들도 하니까 우리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강박이나 모두 바탕에는 비어가는 지방이 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와 ’이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나‘ 사이에서 지방의 축제는 기획되고, 열리고, 또 허전함을 드러내고 만다. 이런 차원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는 게 “’뻥축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실력의 축구팀이 그나마 기댈 곳은 바로 그 ’뻥축구‘”이다(김혼비나 박태하 모두 축구광이다). 축제의 현장에서 쓸쓸함을 느끼게 된다니 아이러니 같지만 엄연한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난다.
”축제장 음지의 꽃인 품바도 있고, 그 품바에 위로받는 팬들이 있고, 아이들을 달래 가며 공연하는 마술사가 있고, 만만찮은 지역민들의 입담을 능숙히 받아치는 노련한 사회자들도 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들이 아는 세계의 바깥이겠지.“ (<작지만 맞춤한 것들을 만나기 위해 ? 경남 산청 지리산산청곶감축제>, 282쪽)
작은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 강릉의 단오제에서(이 축제가 정말 잘 조직되고 볼 만하고, 체험할 만한 게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지리산 산청 곶감축제에서, 완주 와일드푸드축제에서, 아니 모든 축제에는 많거나 적거나 사람들이 있다. 보러오는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배경도 다르고, 미래도 다르겠지만, 어쩌면 전국의 축제를 돌아다니는 것은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리라.
또 허접함을 경험하고 씁쓸해 한다.
우리의 축제들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조합들, 몇 단계를 거쳐야만 의미가 연결되는 행사들이 적지 않다. 혹은 한번으로 끝냈어야 할 행사를 억지로 끌어가면서 의미도 없고, 돈만 낭비하는 축제도 있다. 이 역시 ‘뻥축구’와 관련된 것이지만, 어차피 소재를 발굴해낸 것이니 조금만 신경쓰면 작은 규모나마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구경오는 사람이 적다면 스스로 의의를 찾을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 터이다. 무신경함과 매너리즘이 우리의 많은 K-축제들을 천편일률적을 만들고, 다시 찾을 필요가 없는 행사로 만들고 있다.
다른 이유의 씁쓸함도 있다. 이제는 거의 보편화되다시피하고, 최대 인기 행사가 된 물고기 잡이 행사(<양양연어축제>)를 보면서 김혼비와 박태하는, 잔인함으로 비난받았던 중국의 ‘돼지 번지점프’를 떠올렸다. ‘어차피 잡아먹을 것’이라는 설명은 연어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새끼를 낳기 위해 십 년을 대양을 해매다 돌아온 고향에서 당하는 일이라니... 살아보겠다는 발버둥을 외면하고, 아니 깔깔대며 이를 체험이라고 우기는 것과 동물 보호를 내세우며 반려견, 반려묘를 제 가족처럼 대하는 것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 이런 걸 아이들에게 교육이라고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 이것은 김혼비와 박태하의 시각이지만, 전혀 동물 보호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로서도 물고기 맨손 잡기가 의미 있으며 즐거운 행사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았다. 사실 그들이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축제가 축제다우려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일환이다. 물론 그들은 축제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축제를 즐길 수도 있는 입장에서 어떤 축제라면 기꺼이 휴일이나 휴가를 투자하고, 돈을 투자할 수 있는가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부산스럽고, 혼란스럽고, 부끄럽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혹은 경건하기도 하고, 재미기도 한 하다. 이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마치 잡탕밥처럼 섞여 있는 것이 K-축제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게 K스러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잡탕을 거치면서 세련되어가고 의미를 찾아가는 축제들도 있고, 점점 색깔을 잃어가고, 국적 없고, 의미도 없는 단편적인 행사들로 채워가는 축제들도 있다. 뭐, 굳이 좋은 축제를 만들어가자는 다짐이 없더라도 자연히 정리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읽다 킥킥거리게 만드는 책을 읽으면서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아니 그 전이라도 조심스럽게 어느 축제에 가볼까 궁리를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