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수선가? 낯설었다. 고서(古書) 등을 다루는 고고학자 정도를 생각한 것도 같다. 그런 값이 나가는 책이 아닌 경우 수선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한 것 같다. 절판이 되었으면 모르되, 요새 책이란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이면 며칠 후 내 집 앞으로 배달되는 물건 아닌가? 그런데 꽤나 낭만적으로 들렸다. 망가진 책을 멀쩡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니…… 책에 담긴 기억을 복원시켜 주고 새롭게 만드는 사람이라니......
이 낯설고도 낭만적으로 들리는 직업을 가진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따뜻하고, 무슨 까닭인지 모르게 심장이 뛰는 속도도 조금 빨라지게 했다. 순수미술과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의 대학원으로 진학해서 북아트와 제지(papermaking)을 전공하면서 시작한 것이 책 수선이었다. 대학 도서관의 책 보존 연구실에서 일하며 수천 권의 망가진 책을 고치고 한국에 돌아와 개인 작업실을 연 것이 2018년. 그후로 3, 4년 동안 책에 얽힌 사연, 책 수선을 의뢰한 이의 사연, 그리고 자신의 사연을 담담히 담았다.
다양한 책을 고쳤다. 들 수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책에서부터 만화나 동화 전집, 잡지, 사연이 깃든 책, 결혼 앨범, 여행 일기, 의뢰인 할머니의 일기장까지. 이렇게나 다양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고치기 전에 망가진 책의 모습이 말끔해진 책을 보면서 마음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책 수선가는, 또 의뢰인은 얼마나 더 마음이 흡족할까?).
그런데 책 수선 이야기를 읽으면서 책이란 묘하단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거의 공산품처럼 찍어져 나오는 제품이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간 이후에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 바로 책이다. 밑줄과 메모가 있고, 손자국과 커피 흘린 자국이 더해지고, 혹은 뜯겨진 자국, 헤진 자국들이 모두 개인의 추억과 연관된다. 그런 ‘더럽힘’이 오히려 책을 더 소중하게 만들면서 더욱 개인적인 것이 된다. 내 밑줄이 잔뜩 쳐져 있고, 군데군데 헤진 자국이 있는 책이 새 책보다 더 가치를 가지는 것은 그것이 그런 개인적인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경우엔, 한참을 읽은 책(물론 밑줄도 많이 그었고, 메모도 군데군데 한 책)이 뒤쪽에 인쇄가 잘못된 것을 발견했을 때 정말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서점에 가져가면 새 책으로 바꿔주겠지만 그렇게 되면 그 며칠 동안의 내 흔적은? 결국은 교환을 포기했었다(물론 다른 선택을 했을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 게 책이다.
책 수선은 그런 추억을 없애는 작업이 아니라 점이 또한 묘하다. 책에 담긴 책 주인의 역사, 독자의 역사를 간직하면서 더 오래, 더 많은 독자를 만나기 위한 작업이 바로 책 수선인 셈이다.
걱정되었던 것은, 이런 일로 과연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직까지는 기우란 점은 정말정말 다행이다. 일이 밀릴 정도로 의뢰가 온다고 하니 말이다. 다행인 것은, 그만큼 책을 아끼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도 그렇다(책 수선을 하려면 일단 책이 망가져야 하는 것이니, 책을 아낀다는 말이 어폐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이 망가질 만큼 책을 봤다는 얘기도 되고, 망가진 책을 수선한다는 마음 자체가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책을 수선하는 게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는 것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우리 도서관의 망가진 책들이 왜 그렇게 여전히 엉망인 채로 있는지 불만이 생겼고(테이프는 책에 가장 큰 적이라고 한다. 책에는 절대 테이프를 붙이지 말길), 내게 수선을 해야 할 책이 있는지, 그만큼의 애정을 갖는 책이 있는지도 살펴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에 최선을 다하고, 그것을 이렇게 애정 깊게 표현해 낼 수 있는 문화가 우리의 삶을, 우리의 사회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