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지리학

David N. Livingstone, 《장소가 만들어낸 과학》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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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과학은 보편적(universal)이다. 정상적인 과학이라면 미국에서나 한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수행된다면 동일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학회에서 프랑스 출신, 브라질 출신, 일본 출신 과학자들과 한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가 있다. 그런 보편적인 과학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과학 방법론의 정립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실험실이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하는 마음》에서 전주홍 교수가 ‘무장소성의 (placeless) 공간’으로서 실험실이 근대 이후의 과학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 쓴 이유도 바로 그런 보편적 과학의 조건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사실 리빙스턴의 《장소가 만들어낸 과학》이란 이 책을 알게 된 것도 전주홍 교수의 《과학하는 마음》에서였다).


19세기 이후 과학은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한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로 무장소성의 특성을 지닌 실험실이 보편화되었고, 거의 신성시되었다. 하지만 리빙스턴은 바로 이런 과학의 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바로 과학은 장소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지식(여기서는 과학 지식이라야 하지만, 리빙스턴은 그 범위를 좀 넓혀서 논의하고 있다)이 발생과 유통에 있어서 지리적 특성은 무시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과학의 현상으로서의 장소, 과학이 소비되는 곳으로서의 지역, 그리고 그런 과학 지식이 이동하는 유통까지, 과학은 지리적인 성격을 분명하게 띠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자연선택론)은 분명 영국이라는 지역의 산물이었다. 이미 진화의 개념이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토양이 이미 배태되어 있었다. 그래서 리빙스턴은 다윈이 《종의 기원》 출판을 수십 년 동안이나 망설였다는 것에 대해 다소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은 지역적으로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어떤 곳(미국 남부의 찰스턴)에서는 이를 인종의 구분을 허물어 뜨린다고 봐서 격렬하게 저항한 반면, 또 다른 곳(이를테면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는 강한 인종의 약한 인종에 대한 지배를 옹호하는 이론으로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이 둘 모두 잘못된 반응이었지만, 과학(여기서는 진화론)이 지역적을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만큼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다양한 예를 통해서 과학의 지리학을 주장하고 있다. 이는 과학의 객관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한 비판과도 연결될 수 있다. 과학이 어떤 계급이나 국가, 민족의 이해관계에 무관하다는 주장은, 또한 언제나 그것이 무엇과 연결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것이다. 즉 그런 객관성에 대한 주장 자체가 과학의 성격을 왜곡시키는 또 하나의 시점(view)가 되는 것이다. 충분히 생각해봐야 하는 주장이다.


물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이 ‘과학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하고 있다. 진리와 정당한 주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인데, ‘특정한’ 시간과 지리의 맥락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결과, 혹은 그에 대한 믿음은 결코 과학적이지 않다. 문제는 ‘특정한’이라는 범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인데, 이는 사실 관습적, 암묵적이기도 하고, 과학자 커뮤니티에서 그때그때마다 정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따라서 과학을 통한 세계의 이해는 공간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시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 가지 아쉽거나 혹은 의문이 드는 것은 여기의 과학이 좀처럼 20세기 중반 이후로 넘어오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과학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면서 태동하던 시점의 과학을 중심으로 논지를 펼치고 있다. 과학이 누가 이야기했는지에 따라 그 진실성에 대한 판단이 달라졌던(젠틀맨의 과학이라야 했던 19세기의 유럽의 과학) 시기의 과학과 지금의 과학은 분명히 다르다. 물론 과학 논문을 심사하고 판단하는 데 있어 저자가 누구인지는 분명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모두들 의심한다). 또한 지역적으로 중요시되는 과학 분야가 있으며, 그 지역적 특성 때문에 결과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현실이라고 해서, 과학의 보편성에 대한 이상마저 부정할 수 있는 건가 싶다. (어쩌면 이는 지리학자인 저자가 과학을 역사적으로만 공부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현대과학의 현장은 거의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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