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모험》을 읽고 13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책표지 안쪽에 적힌 기록은 내가 이 책을 어떤 의미로 읽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말을 가장 엄밀하게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번역의 모험》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번역에 관한 책을 읽는 이유는 우리말을 잘 쓰기 위해서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때 이 책으로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지금 생각해봐도 효과가 불분명하다. 이 책은 애초에 기대했을 ‘엄밀한 우리말 사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읽으면서 보니 나의 우리말 감각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이 책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 감각이 어떤 한 권의 책에서 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만, 여기서 번역가 이희재가 얘기하는 것을 상당 부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이 책을 꽤나 의미 있게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물론 항상,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이희재는 “번역을 하면서 한국어에 눈떴다”고 밝히고 있다. 외국말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한국어의 개성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한국어를 한국어답게 쓰고,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갖은 궁리를 했다. 그 궁리의 결과가 이 책에서부터 담겨 있다.
처음 읽을 때 이 책을 통해서 깨달았던 것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한국어는 주어를 잘 쓰지 않는다는 점, 한국어에서 과잉 수동문과 사동문이 한국어답지 않게 한다는 것, ‘적(的)을 남발하는 것을 줄이는 방법(부사를 활용)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읽으면서도 이런 것들을 다시 깨달으면서 한국어의 개성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한국어가 영어나 프랑스어에 비해 동적이라는 점, 그래서 부사와 동사를 잘 활용하면 더 한국어다워진다는 게 그렇다. 또한 우리말의 어휘력을 어떻게 늘릴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을 하면 문장도 매끄러워지면서 분명해지고, 또한 사고의 폭도 넓어진다는 점도 깨닫는다. 그리고 어려운 말을 쓰는 것을 지양해야 하지만 그것이 이미 정착된 한자어를 배척하고 무작정 우리 고유어로 바꾸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많은 부분이 근대 일본에서 들여온 개념어이지만, 바로 그 개념어 때문에 우리말도 풍부해졌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우리말이 있는 데도 낯선 외국어나 일본에서 유래한 말을 쓰는 것은 잘못된 습관이지만, 이미 들여와 잘 쓰이고 있는 외래어는 잘 활용할 일이지 굳이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아마 다시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을 것이다. 그게 12년이 넘어버렸다. 그렇지만 여전히 의미 있게 읽었다. 이 책과 더불어 《번역의 모험》은 종종 펼쳐봐야 하는 책이다. 다시 10년이 넘은 후에야 다시 펼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