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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에 관한 교황과의 대화

카를로 페트리니 with 프란치스코 교황, 『지구의 미래』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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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 운동을 창시한 시민운동가이자 불가지론자인 카를로 페트리니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나 지구의 미래에 관해 세 차례 대화를 나누었다. 다섯 가지 주제, 즉 생물 다양성, 경제, 교육, 이민, 공동체에 관한 짧은 글을 썼고, 이에 관한 교황의 메시지를 연결했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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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배경은 교황이 2015년에 반포한 회칙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이다. 염수정 추기경의 추천 서문을 보면 이 회칙은 ‘공동의 집을 돌보는 것에 관한 회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으며,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경고하면서 인류가 새로운 삶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공동의 집’이란 바로 지구, 혹은 지구 생태계를 의미하고, 회칙은 이른바 ‘통합 생태론’이라고 불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교황은 이 회칙이 ‘녹색 회칙’의 좁은 내용이 아니라 ‘사회적 회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단순히 자연 생태 운동, 즉 생태계의 복원에 관한 촉구가 아니라 인류 문명과 세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을 촉구한다는 의미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아직 돌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건강 문제로 사임하면서 선출되었던 때가 기억난다.


언론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거의 1,300년 만에 나온 비유럽 출신 교황이면서 예수회 사제로서는 최초의 교황으로 진보적 성향을 지닌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그의 출현은 신도 수의 감소와 더불어 사제 성추행 등으로 위기에 처한 가톨릭 교회의 변화를 예고한다고 했다. 종교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종교를 둘러싼 현상에는 관심이 없지 않아 종종 들려오는 교황에 관한 얘기는 긍정적인 얘기들이 많았다. 뚜렷하게 기억에 남지는 못했지만 <찬미받으소서>도 그 일련의 기억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교황이 세계의 안위에 관심이 많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그 방향이 ‘녹색’이라는 것은 충분히 음미할 부분이며 평가받아야 한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런 교황은 없었으므로.


불가지론자인 사회운동가와 교황의 대화 내용 자체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물론 관련된 내용을 묻고 답하고 있지만 교황이 발표한 회칙에 관해 깊이 파고들지 않는다. 코로나 19로 인한 세계적 위기에 관해서도 우려는 하지만 해결 방안이 구체적인 것도 아니다(그 우려는 단순히 바이러스 감염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화의 구체성이라든가 깊이가 아니다. 대화 자체가 중요하다. 동일한 사안을 가지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이가 나누는 것. 이것이야말로 현재 세계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카를로 페트리니가 쓴 글과 교황의 발표문이나 글, 연설문을 연결시키는 것도 그런 작업이다. 이렇게 많은 부분이 동일한 관점을 지니고 있으며, 종교의 유무와 관계 없이 서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으며, 그것이 세계를 변화시킬 원동력이다.


다시 생각해보면, 교황의 언급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 어떤 토를 달 수는 없다. 교황이 만기친람하여 구체적인 사항까지 교인과 인류에게 지침을 내리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방향성이다. 그의 말과 글을 한 글자, 한 글자가 광범한 의미를 지니고 사람들이 음미하며 받아들인다. 그가 보편적인 언어로 던진 말들은 그것 자체로 깊이를 지니며, 넓이를 지닌다. 카를로 페트리니는 그것에 주목했을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대목 두 군데만 언급해보자.

첫 번째는 20세기 중반 로마노 과르다니에 대한 교황의 언급이다.

“그는 상반된 현실을 통합하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긴장을 유지한 채로 더 높은 차원에서 갈등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위대함입니다.” (40쪽)


다음은 이민에 관한 카를로 페트리니의 글에서다(이 글의 제목은 “개인과 사회, 경제와 공동체의 성장 기회”다).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한데, 이탈리아의 토마토는 수출이 많이 된다고 한다. 특히 최근의 주요 시장은 아프리카가 되었다. 거의 독점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토마토는 중앙아프리카로 도착해서 그곳의 토마토 생산을 초토화시켰다. 이탈리아의 토마토가 훨씬 쌌으니까. 그 가격 경쟁력은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다시 아프리카인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위해 목숨을 걸고 유럽 해안으로 몰려든다. 다시 그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는 아프리카의 토마토 시장을 더욱 초토화시키는 토마토 밭에서 착취당한다.

“자유 시장은 닭장 내에서 방해받지 않고 돌아다니는 여우들이 누리는 자유에 불과한 셈이다.” (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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