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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서가(藏書家)의 운명

윤길수, 『운명, 책을 탐하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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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가. 사전적으로 뜻풀이를 하면 ‘책을 많이 간직하여 둔 사람’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순한 뜻풀이를 넘어선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장서가’ 윤길수의 책을 보면 느끼게 된다. 일단 장서가는 책 수집가와 다르다. 윤길수가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제일 큰 차이점은 ‘수집의 순수성’에 있다고 한다. 물론 수집가가 순수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책을 모으고, 유통시킴으로써 수익을 보려 하지 않는 게 장서가라는 얘기다. 윤길수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장서가는 애서가나 탐서가와도 다를 듯하다.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장서가는 책을 읽기 위해서 모으는 것은 아니다. 그 책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구입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읽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저 쓰다듬기만 해도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이다. 반면 애서가나 탐서가는, 물론 책 자체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의 내용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사실은 이런 구분이 별 의미 없기도 하다. 서로 넘나들기도 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점에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책이 쌓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60%, 70%의 책을 빌려 ‘읽는’ 나는 정의상 아무리 책이 많더라도 장서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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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길수 씨는 모범장서가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장서가다. 『운명, 책을 탐하다』는 그의 50년에 걸친 책 모으기를 기록하고 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상경하여 어렵게 공부하며 드나든 고서점(나는 ‘책방’이란 말을 좋아한다. ‘서림(書林)’이라는 말도)에서 책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우리나라 문학 작품이 중심이다. 그렇게 모은 책들이 수만 권이란다. 수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모은 책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가 중요하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 이런 이가 없었다면 우리의 문학사가 너무 초라해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그저 제목만, 내용만 전해지고 실제는 사라져버린 껍데기만 남은 문학사를 구출해 낸 게 바로 이런 책을 사랑하는 사람, 장서가 덕이다.


그의 장서가 생활 50년에 대한 얘기는 경외스러운데, 그중에서도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근대 이후 최초로 문학작품으로써 문화재가 된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대한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박균호의 『그래봤자 책, 그래도 책』에서 알게 된 바가 있는데, 여기서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었다. 윤길수가 중앙서림본 『진달래꽃』을 입수하게 된 경위에서부터 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의 우여곡절, 특히 함께 문화재로 지정된 한성도서본과의 진위 논쟁은 그 과정에 직접 참여한 이의 육성이라 더욱 흥미로우면서도 다소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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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백석의 삶과 문학에 대한 부분도 역시 공들여 읽게 된다. 백석이 해금될 당시에 그의 시를 처음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때가 기억나는데, 그 이전부터 그의 시집을 쫓아 보관해 왔던 저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다. 백석이 남긴 시며, 그와 함께 했던 여인들을 비롯하여 여러 문인들과의 인연이, 저자가 가지고 있는 먼지 나는 책 속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니 아스라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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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저자의 인생에서 중요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 그가 아끼는 한국문학의 작가와 그 책들에 관한 이야기 등이 숱한 사진 자료와 함게 펼쳐지고 있다. 특히 장서가답게(?) 장정(裝幀)에 관한 설명이 상당히 자세하다. 누가 책의 장정을 했으며 그 모양새가 어떤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장정이 화려한 책만을 골라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책 표지가 예쁜 책, 장정이 특이한 책이 관심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장정 자체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장서가의 관심은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또 그게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움을 남겨 놓자면, 책의 구성이 조금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이다. 책과 관련한 개인적인 얘기와 책 자체에 관한 얘기를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중심을 두고 편집을 했으면 어땠을까, 혹은 아예 두 권의 책으로 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에 자신의 책과 관련한 인생을 모두 담으려는 마음이 크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그 덕에 한번에 두 권의 책을 읽은 기분을 갖게 되긴 했다는 점에 고맙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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