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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 세상에 대한 통찰

재커리 D. 카터, 『존 메이너드 케인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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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위기라는 인식이 커질 때마다 케인스는 소환된다. 최근의 경우를 들자면 2008년 금융위기('대침체'라고 하던가)가 있었고, 또 벌써 3년째 기승을 부리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위기가 있다. 케인스 경제학은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정부 재정 지출을 통한 경기부양이라고 할 수 있다(적어도 난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 좀 극단적인 예로, 낡은 병에 지폐를 넣고 땅에 묻은 후 사람들보고 그것을 파내라고 하면, 실업도 없어지고 공동체의 실질 소득과 재산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실제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라 보지만, 현실을 보더라도 그 비슷한 일은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위로금이 바로 그것이다(그 명칭이야 어떻든). 10만 원을 받은 사람이 그 돈을 밖에 나가 쓰면 그 돈은 몇 차례의 유통을 거쳐 전체적으로 그 몇 배의 소득이 되고, 경제를 돌아가게 하고, 결국은 세금의 형태로 정부로 돌아온다는 것이다(심하게 말해 그 돈으로 소고기를 사 먹더라도 전체 소득은 증가한다).


알고 있던 케인스는 그런 경제 이론을 펼친 '경제학자'다(물론 주식 투자로 성공한 경제학자라든지, 뉴턴을 마지막 연금술사로 표현했다는 얘기라든가 하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런데 재커리 카터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케인스가 경제학자라는 명칭으로만 기억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수학으로 학위를 받았으며, 블룸스버리 클럽의 멤버로서 예술을 사랑했던 낭만주의자였고, 정부에 참여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현실에 적극 관여하기를 즐겼던 게 케인스였다. 그는 상아탑 안에서 단순히 경제 이론을 고안한 경제학자라기보다는(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로서 쟁쟁한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했지만) 유토피아적 미래를 내다보며 사회 전반에 대해 철학적 사고를 한 전방위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원래 자유무역의 고매한 원리를 믿었었다. 하지만 1914년의 전쟁과 이은 파리 회담에서의 경험을 통해 시장에 대한 환상을 접었다(그가 히틀러의 등장을 예견했다는 것은 좀 과장된 평가이긴 하지만 그리 틀린 것도 아니다). 그냥 두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자연스레 시장이 적당한 지점을 잡는다는 환상을 버렸고, 시장을 좌우하는 것은 질서와 정당성, 신뢰를 추구하는 정치 권력이라고 냉정하게 바라봤다. 그래서 어떤 정치 권력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시장에 참여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시장은 수학 현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도 했으며 자신의 경제학과 철학을 국가와 세계에 접목시키려 노력했다.


이 책은 케인스의 그런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는 게 이 책의 가치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것은 케인스를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단순한 케인스의 삶을 다룬 케인스 평전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책은 500쪽 언저리에서 마무리가 되었을 것이다. 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그가 고된 업무 끝에 심장마비로 죽은 이후에도 그가 남긴 유산에 대해서도 길게 쓰고 있다. 사무엘슨과 갤브레이스와 같은 경제학자를 통해서, 그리고 레이건, 클린턴, 오바마 등 미국의 대통령들을 통해 케인스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변형되어 국가에 적용되어 왔는지를 설명하는데, 비록 케인스를 추종한다는 명시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사회에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이 적용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거의 반대편에 있다고 할 리처드 닉슨이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다.”라는 말이 곱씹어진다.


케인스는 똑똑했다. 그리고 욕심도 많았다. 세상에 대한 헌신과 자신에 대한 과시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던 인물이었다. 어려운 사람에 대해 생각한 귀족주의자였으며, 마지막 계몽주의자였다. 매혹적인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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