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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와 세계사의 장면들

야마모토 노리오, 『감자로 보는 세계사』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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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도 그런가 본데, 감자는 주로 '촌스러움'과 연관이 되고, 무엇을 감자와 비유하는 경우 긍정적인 경우가 별로 없다. 식량으로서의 가치도 주로 '구황작물(救荒作物)'이라는 분류에서 보듯이 긴급한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먹는 식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감자는 16세기 남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작물이다(밀, 옥수수, 벼에 이어 네 번째라고 한다). 그만큼 실제적인 중요성이 높은 작물이라는 얘기다.


야마모토 노리오의 『감자로 보는 세계사』는 그 감자의 가치를 역사적으로 되짚어 보고 있다. 감자와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엮는 책은 아니고, 몇 가지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우선은 (재배종)감자의 탄생과 관련하여 잉카 문명이 감자에 기초해 있다는 새로운 시각이다. 학계의 주류적 시각은 잉카 문명은 옥수수라는 작물에 기초해 있었다는 것인 데 반해 야마모토 노리오는 여러 정황 증거로 볼 때 감자가 잉카 제국의 커다란 식량 자원으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감자는 수분이 많아 오래 보관하기 힘들어 문명의 식량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게 기존의 시각이지만, 감자를 보관하는 방법이 따로 존재하고 있었고, 안데스산맥이라는 특이한 지리적 조건이 감자 재배에 용이하다는 점을 들어 감자의 문명에서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은 감자의 전파인데, 감자는 (이 책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유럽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 가치를 인정받아 널리 재배되었는데(처음에는 송로버섯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주식으로 삼을 정도였다. 이 대목에서 당연히 나오는 얘기는 아일랜드대기근이다. 이는 정치사회적 원인이 비극을 더했지만, 과학적으로 본다면 단일 품종에 기댄 이유가 컸다. 이 장면은 현재 안데스 산맥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행태(높이에 따라 재배한다든가, 동일한 높이의 지역에서 4개의 지역으로 나눠 휴한지를 둔다든가 하는)와비교된다. 인간이 너무 빠른 속도로 한 가지에 집착했을 때 나타났던 커다란 비극이 바로 아일랜드 대기근이었다.


또 한 가지 장면은 이른바 셰르파라고 불리는 히말라야의 부족에 관한 이야기다. 어느 시기엔가 그곳으로 전파된 감자는 중요한 식량 자원이 되었는데, 이와 같은 내용은 다른 데서는 접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감자는 문명을 일구었고, 전쟁을 통해 전파되었고, 기근에 희망을 주기도 했지만 기근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래 식량으로서 감자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현명하게 이용할 지혜를 갖추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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