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블랙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해부학자이자 법의인류학자이다. 그녀의 작업을 좀더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의인류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법의인류학자란 죽음의 원인과 방식을 찾는 법의병리학자와는 달리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재구성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살았는지를 죽음 후에 남은 시체 속에서 찾아내는 사람인 셈이다. 이 알 듯 모를 듯한 차이가 수 블랙의 작업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법의인류학, 즉 시체 속에 남겨진 삶의 여정을 찾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는 뼈일 수 밖에 없다. 죽음 후에 남겨진 것이 온전한 시체라면 더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을 테고, 그렇다면 법의인류학이라는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인지 모르는, 혹은 어떻게 그 자리에 시체가 존재하는지 바로 알 수 없는 죽음의 경우는 시체가 온전하게 보존되는 경우는 드물다. 뼈만이 존재하거나, 심지어는 뼈 한 조각만이 남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밝혀줄 것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까 수 블랙의 작업 대부분은 뼈를 통하여 죽은 이의 삶을 전체적으로든 부분적으로든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하여 키라든가 나이를 추정하고, 혈통을 알아내고, 또 행적을 재구성함으로써 죽은 사람의 신원의 범위를 좁힘으로써 경찰에 도움을 주고 재판에서 판결에 근거를 제공한다.
이것은 꽤나 매력적인 작업처럼 보인다. 대표적으로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에서 보이는 작업이 그렇다. 그밖에도 많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최근 우리나라의 TV 프로그램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그렇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직감할 수 있는 건, 이 책에서 법의인류학을 통해서 무엇을 추정하고 알아내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를 밝히는 부분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인체의 수 백 개의 뼈의 종류를 아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일일뿐이다. 그 뼈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지 역시 그렇다. 그것들이 일생을 통하여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알아야 한다(뼈라고 해서 늘 같은 모양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떤 질병이나 위해에 의해 뼈들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뿐인가? 사람의 뼈만 알아서도 안 된다. 사람의 뼈와 다른 동물의 뼈를 구분할 줄 알기 위해서는 동물들의 뼈에도 정통해야 한다. 물론 이런 설명만으로도 이 분야의 어려움을 모두 표현할 수 없다. 여기에는 진흙탕 위에서 기어다니며 뼈를 찾아내야 하는 작업 등은 제외되어 있다.
그래서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데 그런 해부학적, 발생학적 지식을 설명한 부분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일부가 파악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 데야 하는 수 없다. 그러나 조금만 참으면 생생한 현장이 기다리고 있다. 거의 저자가 직접 참여하여 밝혀냈거나, 좌절을 겪은 사건들이 기다린다. 이 이야기들 가운데는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보도되었던 우리나라 유학생 진효정 씨 사건도 있다. 그런 사건을 통해서도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는 작업이 우선되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며, 그걸 위해서 피해자의 시신을 통해서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와 같은 사건들에 대한 생생한 서술은 수 블랙과 같은 법의인류학자가 하는 작업이 어떤 것임을 보여줌과 동시에 한 사람의 삶이 몸에, 특히 뼈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려줌으로써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