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 폼페이와 앙코르는 너무도 유명한 도시지만(제대로 알려졌든, 잘못 알려졌든) 인류 최초의 도시 가운데 하나인 차탈회윅이나 미국에 있는 카호키아는 상대적으로 최근에야 알려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그 사라진 도시의 흔적을 찾아 직접 방문하기도 하고, 연구자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도시의 생성과 기능, 그 도시에서 살아간, 혹은 방문한 사람들의 삶에 대해 연구한다. 그리고 도시가 왜 사라져버렸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저자는 역설적으로 도시들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나 종교의 중심지였던 차탈회윅이나 카오키아는 도시의 역할이 다했다고 여겨지자 주변으로 흩어졌고(차탈회윅은 다른 역할로 1000년 이상이나 유지되었다), 한 나라의 수도이면서 정치에 의한 종교의 중심이길 강요받았던 앙코르는 지배 집단이 떠났지만 승려 등이 남아 도시를 지켰다. 로마의 휴양 도시였던 폼페이는 화산 폭발로 화산재 아래 묻혀버렸지만, 탈출한 사람들은 새로운 도시에서 삶을 이어갔다. 도시의 사람들은 환경 변화에도 오랫동안 도시를 고쳐가며 살아갔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던 도시의 기능을 유지할 수 없게 된 단계에 이르서서는 도시를 떠날 수 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어느 한 ‘순간’의 ‘사라짐’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도시들이 구가하던 번영을 유지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환경의 변화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간 공동체는 매우 탄력적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도시가 비워지는 일은 없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정치적 무능력이었다. 그런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게 바로 앙코르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세워진 도시였고, 사람들은(크놈이라고 불리던 사람들) 기꺼이 도시 건설과 수리에 나섰지만, 잘못된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도시은 쭈그러들었고, 사람들은 서서히 빠져나갔다. 느린 속도였지만 도시의 멸망을 되돌이키지 못했다. 도시 계획은 잘못되었었고, 운도 없었다. 더할 나위 없이 번영을 구가하는 현대 우리 도시의 운명도 그럴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류의 대부분은 도시에 산다(사실 그렇게 된지는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다). 도시는 다양한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류하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 교류의 양에 비례해서 기하급수적으로 창조성의 가능성이 늘어난다고 한다. 말하자면 도시는 어쩌면 미래에 대한 축복일 수도 있다. 도시라는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이다(어떤 특별한 재앙이 오지 않는 이상). 하지만 개별 도시가 언제까지고 번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환경의 변화는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것 때문으로만 도시가 황폐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 잘못된 판단이 겹쳐졌을 때 도시는 서서히 무너져갈 것이다. 그리고 먼 미래에는 도시가 ‘사라졌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