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출신의 해부학자이자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의 자서전 격인 『남아 있는 모든 것』은 자신이 법의인류학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해부학을 전공하게 되고, 법의인류학자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법의인류학자로서 늘 맞닥뜨려야 했던 죽음들에 관해서 쓰고 있으며, 특히 인상적인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법의인류학자로서 뼈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들과 그것들을 통해 해결하거나 해결을 시도했던 구체적인 사건들에 대해 쓴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http://blog.yes24.com/document/16269843)보다 시기적으로 먼저 쓴 책이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남아 있는 모든 것』이 더 나중에 읽어야 하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남아 있는 모든 것』의 원제는 번역된 제목과 똑같이 "All That Remains"다. 그런데 부제는 "A Life in Death"로 죽음 속에서 찾아낸 삶의 이야기임을 알려주고 있다. 결국 이 책은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녀가 맞닥뜨린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남겨 놓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맞닥뜨린 죽음은 개인적인 것도 있고(그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죽음이 그렇다), 직업적으로 경험한 것도 있다. 직업적으로 경험한 죽음도 여러 부류로 나뉠 수 있는데,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와 같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면서 알게 되고 캐묻게 되는 죽음도 있지만, 코소보 전쟁과 동남아시아 쓰나미 사태와 같은 비극적인 집단 죽음과 관련한 것도 있다. 물론 개인적으로 겪게 된 죽음이 죽음의 수량(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지... 참 난감하다)과는 상관 없이 더 인상적일 수 밖에 없지만, 그녀는 어떤 죽음 앞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코소보에서 비인간적인 전쟁 범죄의 실상을 밝혀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쓰나미로 희생된 이들의 신원을 밝혀내 가족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원을 밝혀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치권과 경찰에 그것을 각인시키고 새로운 매뉴얼과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죽음이 그저 한 사람의 비극적인 사태로 끝나고 기억에서 빨리 지워지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보다 사회적인 방식으로 기억되면서 개인적으로도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은 이가 누구인지부터 확인되어야 한다. 그녀는 바로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일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절실하게 알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득하고 있다.
죽음이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가장 특수한 경험이라는 것을 죽음에 관한 책을 읽을 때마다 깨닫는다. 죽음은 누구나 겪을 수 밖에 없지만, 단 한번만 겪는다. 그래서 어떤 죽음의 경우는 많은 죽음 가운데 하나로 격하되기도 하지만, 그 하나의 죽음은 우주의 소멸과도 같다. 그러므로 하나하나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윌리엄 글래드스턴 경의 말이라 추정되는 “한 나라가 고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의 자비심과 준법정신,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마음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모든 죽음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게 고맙다. 언젠가 다가올 내 죽음 뒤에 남겨질 이야기도 그렇게 누군가 진지하게 들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