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돕스, 『1945』
기자 출신 마이클 돕스는 스스로 ‘냉전의 자식(Child of the Cold War)’이라 칭했다. 냉전이 본격화되던 1950년 생후 8주의 그는 외교관인 부모를 따라 당시 소련 땅을 밟았다. 그는 냉전의 전개에 관심을 가지고 기자의 감각으로 책을 썼다. 가장 먼저 쓴 책은 공산주의의 붕괴와 소련 시대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1991』(원제 “The Fall of the Soviet Empire”)였고, 그 다음은 1962년 케네디 시대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1962』(원제 “On the Brink of Nuclear War”)였다. 냉전의 상징적인 사건들에 대한 책을 낸 그는 냉전 3부작의 마지막으로 ‘당연히’ 냉전의 시작된 해에 이른다. 『1945』가 바로 그 책이다. 1945년부터 냉전이 시작되었다는 견해는 아주 소수가 가진 의견이다. 하지만 1945년에 냉전의 싹이 텄다는 것은 누구라도 인정한다. 마이클 돕스는 냉전의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냉전에 관해 탐구했는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은 그 역순으로, 말하자면 시대순이다.
이야기는 1945년 2월 전쟁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크림 반도의 휴양지 얄타에 3거두, 즉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소련의 ‘영도자’ 스탈린이 모이는 장면에서 시작한다(바로 그 유명한 ‘얄타 회담’이다). 이제 독일군은 후퇴를 거듭하고 있었고,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지만 연합국의 승리가 목전이었다. 연합국의 주축인 미국, 영국, 소련의 지도자들은 미리 전후의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것을 평화의 청사진이라 불렀지만, 사실은 각국의 이해 관계의 관철이었다. 독일의 처리, 폴라드 국경과 청지 체제의 확정, 그 밖의 민감한 지역에 대한 관리 문제를 두고 3개국 정상들은 논의를 거듭했고, 결국 합의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이 서명한 합의문은 매우 애매모호한 것이었고, 그래서 어떻게든 해석할 수 있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유럽은 2개의 진영으로 나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아직 한반도는 아니었다).
알타에서부터 병색이 완연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뇌출혈로 사망한다. 4선 대통령이라는 미국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고 4번째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죽게 되었고 (루스벨트의 의외의 선택으로 부통령이 지명되었던) 트루먼에게 대통령이 자리가 넘어간다. 트루먼은 외교에 관해서는 거의 경력이 없었으며 사실 관심도 별로 없었다. 심지어 부통령이었지만 맨해튼 계획(원자폭탄 개발)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 그가 주역으로 참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독일의 총통은 자살했고(그의 죽음에 대한 신화는 일정 부분 소련의 트릭 때문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끝이 난다. 태평양에서의 일본의 저항은 아직 끈질겼다. 일본 본토로의 진입으로 전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면 수십 만 명의 미군 희생을 전제로 해야 했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이 일본에 대한 전쟁 참전을 종용했고, 소련의 스탈린은 반대 급부를 요구했다(한반도 분단의 씨앗도 거기서 뿌려졌다). 그 와중에 원자폭탄 개발이 성공하고, 히로시마 폭격이 이루어진다. 얄타회담 6개월 후의 일이었다.
그 사이 ‘대통령’이 바뀐 상황에서 독일의 포츠담(이 포츠담이 베를린과 매우 가깝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에서 다시 3개국 정상회담이 열린다(바로 역시 유명한 ‘포츠담 회담’이다). 이미 ‘철의 장막’은 드리워지고 있었다(처칠이 ‘철의 장막’이라는 언급을 하게 된 것은 물리적 장막보다는 전체주의적 지배와 관련한 정보의 장막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마이클 돕스는 지적하고 있다). 회의 도중에 치러진 영국의 선거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총리’는 패배하고 자리에서 내려온다(이에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이는 스탈린이었다). 포츠담 회담은 전리품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회의였다. 트루먼은 그 지리한 설전을 지루해했고, 스탈린은 끈질기고, 능구렁이 같이 회담에 임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마이클 돕스는 “제2차 세계대전의 동맹이 냉전이ㅡ 라이벌로 바뀌는 과정은 단 6개월 만에 이루어졌다” (531쪽)라고 쓰고 있다. 바로 얄타 회담에서 포츠담 회담에 이르는 6개월 동안 냉전의 싹이 돋아났다고 보는 것이다. 그게 1991년까지 이어진다.
주로 3개국 정상과 그 지도부들의 면면과 행동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점점 서로 멀어지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미국 출신으로서 당연히 서술의 기준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냉철하게 그때의 상황을 기술하고 있다(기자라는 직업 의식?). 미국이나 영국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런 태도가 냉전의 시작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역사책에도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은 꽤 비중 있게 서술하고 있었다(지금은 어떤지 확인해보지 못해 모르겠다). 한반도의 운명이 그 두 회담으로 정해졌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한반도에 관한 얘기는 단 한 차례 지나가듯 등장한다. 3거두의 주요 관심거리에 있지 않았고, 저자 마이클 돕스도 큰 관심을(아니 작은 관심도) 두지 않는다. 한 나라의 운명이 이리도 팔랑거렸을까를 생각하면 우울하고 분노도 인다. 국가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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