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맞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은 순응해가며, 아니 적어도 순응하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래서 세상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려 ‘불꽃처럼’ 살다간 사람들을 경외한다. 경외하지만 세상의 질서를 만들고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이들을 역사에서 배제해야 하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야 한다. 어쩌면 역사의 싸움은 그런 이들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얼마나 남기느냐, 혹은 지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강부원은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싸우며 살아간 사람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거나, 달리 기억되던 이들을 소환해서 되살려내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좌절의 연속이었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많은 삶이었다. 실패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았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물다섯 명의 인물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1부 자체가 ‘세상에 맞서 싸운 여자들’이라고 하여 여성만 다루고 있다. 평양 을밀대에 올라 자신의 주장을 펼쳐, 최초의 고공투쟁 노장자가 된 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 기생으로서 3.1운동에 참여하고 나중에는 열혈 독립운동가로 거듭난 정칠성, 영화 <암살>의 모델이 되었던 남자현, 조선공산당의 여성 트로이카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들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남성 독립운동가, 사회주의자에 가려 있었던 여성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여성으로서 한계를 거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끝까지 추구한 인물이었다(고명자는 물론 나중에 변절하고 말았지만). 그리고 최초로 일본군의 전쟁 범죄 피해(위안부)를 증언한 김학순,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수십 년간 해고 무효 투쟁을 벌인 용접공 김진숙 역시 온 몸으로 한 시대를 대변한 용기 있는 삶을 살아간 여성들이었다.
1부를 넘어가더라도 여성들은 더 등장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김점동(혹은 에스더 김, 에스더 박), 조선복재단기를 발명한 이소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 여성 언론인으로 <한겨레> 창간에 앞장섰던 조성숙, 그리고 60년대 문학소녀의 대명사였던 전혜린이 그 인물들이다. 이들을 하나의 결로 묶기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불꽃같은’ 삶을 살아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성으로서 제한된 삶을 강요하는 사회에 결연히 반대하고 꿋꿋이 자신의 삶을 살아갔던 인물들이었다.
다른 이들, 즉 남성들도 대부분 그렇다. 안창남보다 10년이나 먼저 비행사가 되어 일제와 싸웠던 서왈보, ‘최악의 불량선인’으로 불렸던 아나키스트 박열, ‘마을문고’의 창시자 엄대섭, 한탄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진단법을 발명했으며, 백신까지 개발한 이호왕, 한국 영화의 개척자로 우뚝 섰지만 젊은 나이에 죽고 만 나운규, 민족 화가 이쾌대, 4.19 이후의 한국 문학의 찬란한 별로 떠올랐고 지금도 전설로 남은 김승옥 등이 그렇다. 이들의 삶 역시 불꽃 같았다.
그러나 젊었을 때의 열정을 꺾고 굴종의 삶을 살아간 이들도 소개하고 있다. 젊었을 때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회주의자였지만 결국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한 정연규, 쥘 베른의 SF소설을 최초로 번역한 인물로 밝혀진 신태악 같은 인물들이 그런 인물들이다. 한국 최고의 건축가로 평가받는 김수근에 대해서도 그의 야누스적인 면(‘공간’과 ‘대공분실’을 모두 설계)을 모두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우리 근현대 역사의 주역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빠진 역사가 온전한 역사는 아니다. 위험한 사상을 가졌고, 세상의 질서에 반대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는 그들이 쌓아올린 유산이 더미다. 모든 이가 이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들의 추구했던 가치를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존중해주는 것은 그들이 남긴 유산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 후대의 의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