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한 우리의 친척, 네안데르탈인

리베카 랙 사익스, 『네안데르탈』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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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 그들이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아 호모 사피엔스와 함께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다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으며 이런 상상을 해봤다.

서로 어울려 살아가며 서로 견제하기도 하며 호모 사피엔스의 독주가 저지되어 지금의 기후 위기 같은 것은 없었을까?

그러나 금세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로 가장 가까운 종이자,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로 어쩌면 현대가 오기도 전에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멸종하려 총력을 다했을 거란 시나리오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비록 네안데르탈인이 멸종에 이른 이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끝까지 명백히 밝혀질 리는 없겠지만, 여러 원인 중에 호모 사피엔스가 떨궈져 갈 리도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다. 만약 그들이 멸종되지 않고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면 상황에 따라 오히려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그랬다면 어쩌면 ‘사피엔스’라는 종명을 그들이 차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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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류학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을 붙잡는다. 특히 오래된 표본으로부터 DNA를 추출하고 분석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 중 하나는 호모 사피엔스의 DNA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최대 4%나 남아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4%라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1세대가 지날 때마다 1/2씩 동일성이 감소하는 원리를 따져볼 때 4%라는 숫자는 4, 5세대 전이라는 (어쩌면 끔찍한) 소식을 전한다. 물론 4, 5세대 전에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교배를 해서 후손을 남겼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들과 우리의 조상이 서로 그렇고 그런 관계를 맺었고, 그 유산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은 묘한 느낌을 갖게 한다. 네안데르탈인은 분명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끈질긴 선입견이 있다. 털북숭이에, 약간 구부정한 어깨, 큰 머리통, 억세지만 둔해 보이는 몸 등등. 그렇게 그들을 그리고 인식하는 것의 요체는 그들이 별로 스마트하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표현은 그들은 우리에 비해 몸은 더 건장했을지 모르지만 우리만큼 똑똑하지 않아서 멸종하고 만 것이다, 라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이런 생각은 네안데르탈인이 처음 발견된 이후부터 바로 생겨난 것이지만, 지금까지도 아주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그런 관념은 호모 사피엔스 내에서의 인종적 편견을 공고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아프리카인, 동아시아인을 보라. 어쩐지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하지 않은가?


네안데르탈인은 1856년,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3년 전, 독일 네안데르 계곡의 펠트호퍼 동굴에서 처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봇물 터진 듯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드문드문, 그리고 어느 시기에는 매우 자주 네안데르탈인의 흔적들이 발굴되었다. 그렇게 발굴된 그들의 뼈, 도구, 흔적 들을 종합한 결과,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45만~40만 년 전 하나의 종(種, species)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유럽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유라시아 지역에 넓게 분포하여 영국의 웨이즈부터 중국 국경, 아라비아 사막 가장자리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수십 만 년 동안 살아가던 그들은 약 4만 년 전 사라져 버렸다. 멸종이었다. 그리고 지구를 누비는 호미닌은 호모 사피엔스만 남게 되었다.


리베카 랙 사익스는 그 40만 년 동안의 네안데르탈인의 자취를 더듬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인 발견되고 150년 동안의 연구 성과를 총정리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그들을 앞에서 보았던 뭔가 모자란 종족에서 우리의 일가친척으로 복원하고 있다. 그들은 어떤 몸을 가지고 살았는지에서 시작하여(그들에게 양복을 입혀 지하철 역에 세워놓으면 누구도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불을 사용해서 살아갔을 거란 증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어떤 것을 먹고 살아갔는지, 어떤 데서 살았는지를 추론한다. 그들도 심미안을 가지고 있던 존재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들이 같은 네안데르탈인의 사체를 훼손한 증거를 단순한 인육(人肉) 차원에서 보면 안된다고 간곡히 설득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증거들과 그것들에 대한 해석을 읽다보면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과연 무엇이 달랐나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왜 그들만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정말 의문이 들기도 한다(정말 호모 사피엔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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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네안데르탈인에 대해 관심이 많다(그렇지 않다면 그에 관한 논문이 <Nature>, <Science>와 같은 저널에 그토록 자주 실릴 리 없다). 그 관심의 이유를 리베카 랙 사익스는 “우리 자신의 멸절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일 수도 있다고 쓰고 있다. 멸종이라는 공포감은 우리보다 먼저 사라져 간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 관심은 또한 반대로 우리가 살아 남았다는 다행스러움, 내지는 우월감과도 연결된다. 우리 존재에 대한 공포와 소망이 투영된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이 종합적인 ‘보고서’를 읽다 보면 그들의 멸종은 어쩌면 우연적인 것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모 사피엔스도 적어도 한 번 이상 멸종의 위기에 처했었다. 하지만 ‘우연히’, ‘가까스로’ 종을 보존할 수 있었고, 그 덕에 지금 이렇게 기후 위기까지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온갖 연구 결과를 들여다보며 그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본 저자는 네안데르탈인은 우연히 멸종의 길에 들어섰을 수 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우리가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들어가는 길을 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네아데르탈인의 등장에서 멸종까지의 그리 길지 않은(지구 역사에 비하면 거의 순식간이다) 역사는 그저 우리의 친척이 그렇게 살다 갔다는 처연한 느낌만 주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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