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양에서 무서운 호랑이로

아시네토박터(Acinetobacter) 1

by ENA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Acinetobacter baumannii)는 대장균, 폐렴구균, 녹농균, 고초균, 이질균과 같이 널리 불리는 우리말 이름이 없다. 그 이유는 오랫동안 이 세균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균이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199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세균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연구하는 이도 드물었다. 병원에서 이 세균이 분리되더라도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러다 1990년대, 2000년대 들면서 상황이 돌변하기 시작했다.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이 세균에 감염된 환자가 나오고 사망하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이 이 세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9.11 테러 이후 벌어진 이라크전쟁이었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이때 이라크에 파병되었다 부상당하고 돌아온 병사들에서 의문의 감염 환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라는 세균에 감염된 환자들이었다. 당시 위싱턴 DC에 있는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한 병사 환자 중 거의 10퍼센트가 이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이런 이유로 이 세균의 별명이 “Iraqibacter”가 되었다). 주로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가 후송되는 과정에서 이 세균에 감염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는 평소 흙이나 물에 존재하는 세균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감염될 수 있으며, 또 다양한 환경 조건에서 잘 살아남기 때문에 병원으로 들어와서는 병원 환경에 잘 적응하였다. 특히나 군인들을 잘 대우한다고 알려진 미국에서 병사들이 감염되자 이제 이 세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구글 엔그램의 데이터를 보더라도 1990년대 들어서 이 세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다 관심이 수그러들 즈음 2000년대 갑자기 증가하는 상황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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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의 의사들은 항생제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항생제 사용에 따라 이 세균은 놀라운 속도로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였다. 그래서 이른바 다제내성(multidrug resistance)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가 급증하였고 이제는 병원에서 가장 곤란한 세균이 되었다. 2010년 미국감염학회(IDSA)에서 시급히 대처가 필요한 병원균으로 정한, 이른바 ESKAPE 병원균(Enterococcus faecium, Staphylococcus aureus, Klebsiella pneumoniae, Acinetobacter baumannii, Pseudomona aeruginosa, and Enterobacter cloacae)에도 포함되었고, 2017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 발표한 항생제 개발이 가장 필요한 병원균 순위 목록에 첫 번째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전까지 순한 양으로 여겨졌던 세균이 21세기 들면서 호랑이 같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 세균이 세간의 주목받은 사례는 또 있었다. 2010년 8월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 도쿄의 한 대학병원에서 벌어지고 있을 일을 일제히 보도했다. 병원에 입원한 수십 명 환자가 세균에 감염되어 그중 일부가 사망하였다는 것이었다. TV 화면과 신문 사진은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사과하는 병원 관계자를 보여줬다. 원인이 된 세균이 바로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였다. 이어지는 보도에서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하는 질문을 던졌는데, 사실 우리나라라고 다를 바가 없었다. 이전에 그 정도로 이슈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병원의 중환자실에서는 이 세균에 의한 병원내 감염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항생제 내성률은 이미 굉장히 높은 상황이었으며, 이로 인한 사망도 아마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지만. 이러한 상황은 당시 유럽에서 시작된 NDM-1 생성 폐렴간균 감염의 확산과 더불어 당시 한 종만 지정되어 있던 항생제 내성균 관련 법정 전염병을 6종까지 늘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에는 어떤 사람의 이름이 있을까? Acinetobacter라는 속명은 akineto, 즉 ‘움직이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에서 왔다(그래서 앞에서는 이 세균에 대해 우리말 이름이 없다고 했지만, 간혹 ‘부동간균’, 즉 ‘움직이지 않는 막대 모양의 세균’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그런데 종종 운동성이 있는 아시네토박터균이 발견된다). 종명인 “baumannii”가 바로 폴 보우먼(Paul Baumann)이라는 미국의 세균학자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폴 보우먼은 여기에 소개하는 많은 사람들과 달리 현재 살아 있는 인물이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 (UC Davis)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지냈던(현재는 명예교수) 그는 그의 오랜 동료이자 아내인 린다 보우먼(Linda Baumann)과 함께 DNA 염기서열 결정과 같은 유전학적 기술을 미생물에 적용한 첫 미생물학자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 별 볼 일 없었던 세균의 이름을 차지하게 된 것은 1968년에 발표한 논문 때문이었다. 그는 토양과 물에서 아시네토박터균을 분리하여 배양하는 방법을 밝힌 논문을 발표하면서 이 세균이 주로 생태학적으로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그의 주 연구 주제는 아시네토박터균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세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의 주요 연구 주제는 세균과 식물의 수액을 빨아먹는 곤충 사이의 공생 관계였고, 해양 세균인 Vibrio와 Photobacterium, Alteromonas, Pseudomonas 등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UC Berkeley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이 1966년이었으니 아마도 아시네토박터균에 대한 연구는 박사 학위 중에 수행한 연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시네토박터를 다룬 논문의 소속도 UC Berkeley다.


보우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세균은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만이 아니다. Oceanimonas baumannii라고 하는 해양 세균이 있다. 아시네토박터 바우마니가 폴 보우먼만을 따라 지어진 이름이라면 이 세균에서 baumannii라는 종소명은 아내 린다까지 포함한 이름인데, 1983년 그들이 찾아내고 명명했던 Pseudomonas duodoroffii에 대해 2001년 연구자들이 Pseudomonas 속과는 다른 특징을 알아내 Oceanimonas라는 새로운 속을 만들고 그 속에 속하는 하나의 종에 폴과 린다의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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