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이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얘기다. 그가 위대해진 것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체절명의 국가 위기가 그의 기질과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는 명예와 업적에 대한 놀라운 투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앤서니 스토는 그것이 유전적 소인과 함께 어린 시절의 경험이 함께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우울증을 억누를 수 있었다. 처칠은 스스로 자신의 우울증을 ‘검은 개’라고 불렀다. 검은 개란 표현은 우울증의 끈질기면서 음울한 느낌을 너무나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카프카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혼란을 가지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을 늘 불편해했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 맺는 것을 불편해 했을 뿐만 아니라 위협적인 것으로 여겼기에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글을 사람들이 인정해 주었을 때야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핵으로 일찍 죽었다. 그리고 신화가 되었다. 그런 카프카 역시 우울증을 앓은 것으로 보이며 쥐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카프카의 쥐’는 자신의 세계를 침범하는 위협을 의미했으며, 그건 그의 조현병과도 연관이 있다.
이렇게 정신분석의 앤서니 스토는 처칠과 카프카를 예로 들며 그들의 삶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에 어떻게 방해받고, 또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거나, 혹은 이용하며 위대한 성취를 이룰 수 있었는지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있다. 제목이 ‘처칠의 검은 개’와 ‘카프카의 쥐’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이 두 편의 글은 앤서니 스토가 쓰는 글의 진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밖에도 물리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스노, 최고의 물리학자 뉴턴, 정신의학의 태두 프로이트와 융 등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런 분석을 통해 그들의 어쩌면 약점이 될 수 있었던 성격, 혹은 질병이 그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며, 또 업적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분석은 보다 보편적인 분석으로 나아간다. 이를테면 창의성에 대한 것이라든가, 정신분석이 과학인지의 여부, 천재가 보통의 성격을 갖는 인물인지,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인지에 대한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정신분석이 과학이 아니라는 고백과 같은 글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과학자를 지망했던 과거 때문인지 정신분석을 과학의 반열에 올리려 했고, 그의 제자들도 따랐다. 하지만 과학이 대상과 과학자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는 데 반해 정신분석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과학이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스키너의 실험심리학은 바로 그 간격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면서 과학이고자 했지만, 과학도 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정신분석도 이루지 못했다고 본다.
천재가 광기에 사로잡힌 이가 아니라는 글 역시 인상 깊다. 두 가지 견해의 근거를 세심하고 제시하고 있지만, 그는 분명하게 천재라 불리는 이들은 특별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일 뿐 광기가 천재성과는 관련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천재들이 광기에 사로잡히는 경우를 볼 수 있지만,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는 오히려 정상적인 활동 때보다 더 나은 업적을 내지 못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천재라는 인식은 서로 다른 시기의 사람을 하나로 파악하는 데서 오는 오류라 보는 것이다.
처칠이나, 카프카, 뉴턴 등에 대해서 정신분석의 측면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여타의 전기, 평전과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