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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화학이 교차하는 지점들

장홍제, 『역사가 묻고 화학이 답하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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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현대 문명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지를 쓴 책(이언 스튜어트의 『수학의 이유』)을 읽은 바로 다음인데, 이번에는 화학이 역사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를 쓴 책을 읽게 되었다. 사실 책들이 대부분 그렇다. 자신의 분야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하지 않으면 그게 책으로 나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미생물이 세계사의 흐름을 뒤바꾸고, 씨앗이 역사를 뒤흔들었다는 얘기가 다 말이 된다. 세상의 일이 큰 것, 작은 것 할 것 없이 무수한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들이 모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해해야 옳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화학이 얼마나 역사 속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해왔는지에 대해 수다를 떨고 있는 장홍제 교수의 이 책도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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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어떤 역사를 골랐는지부터 궁금하다. 맨처음 ‘사약’을 고른 것부터가 심상찮다. 사약이 사약(死藥)이 아니라 사약(賜藥)이라는 밝히는 것 자체가 의미심장한데(아무나 사약을 내려 죽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물론 핵심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얘기다. 말하자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毒)에 관한 얘기다. 투구꽃의 아코니틴이라든가, 비상, 비소과 같은 암살 도구들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결론은 파라켈수스가 얘기한 대로 독과 약의 경계가 그리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다음 얘기는 예상 밖으로 모차르트에 관한 얘기다. 물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러니까 앞의 얘기와 관련이 되는 독에 관한 얘기지만, 음악을 화학으로, 화학을 음악으로 전환하는, 꽤나 할 일 없는(?) 이들의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모든 걸 화학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이들의 심심풀이라고나 할까? 음악 얘기를 했으니 미술 얘기도 해야 하는데, 사실 미술은 화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재료인 물감이 화학 물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새로 알게 된 것은 식물에서 가져온 물감과 광물에서 가져온 물감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다른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식물성 물감은 흐려지면서 하얗게 되는 데 반해, 광물성 물감은 높은 안정성을 갖지만 색상이 달라지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렘브란트의 <야경>이 대표적). 화학적으로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을 나만 몰랐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역사 이야기는 이어지는데 코끼리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침공한 한니발에 관한 얘기다. 여기서는 식초로 바위를 녹인 리비우스의 기록을 검증한다. 물론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이러면서 식초의 성질, 그리고 나아가 열역학에 관한 기본 강의가 이어진다.


화학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연금술(鍊金術)에 관한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런데 좀 다른 것은 그들의 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사기를 이야기한다. 그것을 오늘날의 실험실에서 재현하는 방법까지. 어쩌면 어디선가는 지금도 이것을 이런 일도 있었다가 아니라 연금술의 사기를 써먹는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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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책에서 여러 꼭지에 걸쳐서, 신경 써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화약과 화학 무기 같은 것들이다. 콘스탄티노플 공성에 이용되었던 우르반 대포에서 화약의 제조에 관해서, 이른바 ‘그리스의 불’이라 불렸던 무기의 정체, 최루성 화학무기에서 독가스까지,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화학을 그렇게 알뜰하게(?) 써먹었다. 화학이 인명을 살상하는 데 쓰인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화학이 또한 문명을 발달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데도 쓰이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장홍제 교수도 지적하고 있듯이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가 문제임 셈이다.


저자인 장홍제 교수는 ‘화학 잡담’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큰 맥락을 두지 않고 역사 속에서 화학이 어떤 모습으로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그 원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책상 건너편에 편하게 걸터앉아 설명하듯 쓰고 있다. 그러나 정연하지 않은 맥락 속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은 찾을 수 있다. 수학이 그렇듯, 생물학이 그렇듯, 화학 역시도 그것을 쓰는 사람에 따라서 쓰임새가 달랐다는 것이다. 그건 쓰임새가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진 현대에서 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이다.


물론 이렇게 심각하게 이 책을 받아들여도 되지만, 이 책이 가장 큰 덕목은 재미다. 일단 재미있는 화학책이다. 그런 책 그렇게 흔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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