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존귀하고, 잔혹하다

이나가키 히데히로, 《생명 곁에 앉아 있는 죽음》

by ENA

이나가키 헤데히로의 책으로는 《이토록 아름다운 약자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 《패자의 생명사》에 이어 네 번째 책이다. 사실 한 권 한 권 읽으며 같은 저자의 책이란 의식이 없었다. 지금 보니 그렇단 얘기다. 《세계사를 바꾼 13가지 식물》를 제외하면 모두 마이너리티 쪽에 상당히 기울어져 있다. 관심을 덜 받을 것 같은 생명, 혹은 생물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으며, 그런 관심을 그대로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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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에서 코끼리까지 32가지 생물의 죽음을 스물 아홉 꼭지의 글에 담고 있다. 그가 다루는 생물들의 죽음은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생물이 지니고 있는 프로그램과 같은 죽음이 있다. 이를테면 땅에서 7년을 지내다 여름 한 철 시끄럽게 구애하다 떠나는 매미라든가, 자신이 태어난 강물로 거슬러 올라와 알을 낳고는 최후를 맞이하는 연어, 생애 단 한 번뿐인 치명적인 사랑을 나누고 죽는 문어, 한평생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 죽어가는 도롱이벌레 암컷과 같은 것들이 그렇다.


다른 동물과의 경쟁, 같은 종의 생물에 의해 죽어가는 생물도 다룬다. 새끼를 지키다 결국은 새끼에게 파먹이는 집게 벌레가 있고, 우리에게는 귀찮은 존재이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기 위해 인간의 살로 돌진하는 모기가 있다. 수컷 사마귀는 암컷에게 먹힐 것을 각오하고 짝짓기를 한다(새로 안 사실이지만 짝짓기를 하는 모든 수컷 사마귀가 다 죽는 것은 아니란다. 살아남는 비율이 높다고). 바다거북도, 개복치도 어마어마하게 낮은 확률로 성체가 되며, 그런 삶을 자손에게 물려준다. 하염없이 먹이를 기다리다 죽는 무당거미도 있다.


그리고 인간과 관련되어 죽음을 맞는 생물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필사의 진입과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인간의 손에서 죽은 모기도 그렇고, 자신이 태어난 연못을 향해 하염없이 도로를 건너다 차바퀴에 깔려 죽은 두꺼비가 그렇다. 태어나고 겨우 달포 지나 햇빛을 처음 보는 날이 제삿날이 닭이나, 실험 동물로 실험실에서 인간 대신 죽음을 시험받는 쥐, 귀여워야 선택받고, 그 귀여움이 다하면 안락사 당하는 반려동물 개와 같은 경우 애처로운 마음이 절로 든다.


이 짧지만 감성적으로 동물들의 죽음을 다룬 글들은 모두 생명이란 존귀하면서, 잔혹하다는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 자체는 잔혹할 수 있지만, 그런 죽음이 있기에 존귀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 인간에 의해 멸종의 길로 접어든 생물의 경우에는 그런 존귀함에 대한 인식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이나가키 헤데히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생물에게 ‘죽음’ 같은 찾아온 시기는 10억 년 가량 전이 아닐까 여겨진다. 오랫동안 생물에게 죽음은 없었다. ‘죽음’은 38억 년에 걸친 생명체의 역사 속에서 생물 자신이 만들어낸 위대한 발명인 것이다.” (111쪽)


저자는 이런 생명의 죽음을 다루면서 때로는 냉정한 시각을 보이기도 하지만 8할, 9할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쓰고 있다. 어떤 생명이든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것을 받아들 일 수 밖에 없지만, 모든 죽음은 어떤 의미에서도 그 생명에게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었기에 생명의 연속성이 생겼다. 그렇기에 죽음은 오로지 슬픈 것만은 아니다. 자식에게 자신의 몸뚱아리를 내주는 생물만이 아니라 모든 죽음이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매우 존엄한 일인 셈이다.


죽음은 모든 생명의 곁에 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죽음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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