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족에 쫓기던 로마제국민 중 일부가 갯벌이라 더 이상 쫓을 수 없을 거라 여겨졌던 불모의 땅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세워진 도시가 베네치아다. 역사는 452년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베네치아가 공식적으로 멸망한 것은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서였으니 베네치아의 역사를 1천년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시오노 나나미의 베네치아 역사에 대한 책 《바다의 도시 이야기》의 부제도 “베네치아공화국 1천년의 메시지”다).
그 베네치아의 역사를, 노련하고 섬세한 역사저술가 로저 크롤리는 시작과 끝까지를 모두 이야기하는 대신, 공화국이 번성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실질적으로 쇠락에 드는 시점까지 500년(사실 더 엄밀하게는 300년이다)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그 500년의 역사도 면면하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중요한 변곡점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즉 국가 성장의 일대 도약을 이룬 제4차 십자군(가장 치사하고 더러운 전쟁이었지만)에 대한 이야기가 1부의 중심이고,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벌인 같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 제노바와의 대결, 그리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최종적인 승리가 2부의 이야기다. 3부는 쇠락의 이야기인데, 1400년대 중반부터 오스만제국(여기서는 오토만이라고 번역하고 있다)과의 대결에서 점차 밀리면서, 끝내는 세계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렇게 몇몇 중심인 시점을 잡고, 그 시점의 격렬했던 대응을 통해 베네치아가 어떤 국가였는지를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베네치아를 ‘바다의 도시’로 칭했는데, 로저 크롤리는 ‘바다나라’라고 하고 있다. 로저 크롤리는 베네치아의 정체성을 ‘도시’가 아니라 ‘국가’로 보고 있는데, 특히 이탈리아반도 북쪽의 작은 본거지만이 아니라 지중해 전역에 걸쳐 만들었던 식민지와 교역지를 가진 하나의 ‘제국’으로 베네치아를 그려내고 있다.
사실 보잘 것 없는 뻘밭에서 시작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솟아오르고, 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장엄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특히 베네치아가 도약하게 되는 계기가 된 제4차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군이 또 다른 기독교국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약탈한 전쟁이었다. 그것은 장사꾼의 잇속이 있었고, 종교적 대의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베네치아의 실용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그것 때문에 돈만 아닌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히고, 교황으로부터 파문까지 당하지만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후로도 몇 백 년 동안 한결같은 노선을 유지한 베네치아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베네치아의 처세를 오늘날의 외교와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지만 실용적이고, 냉철한 이성에 기초한 그들의 외교술이야말로 현대에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기회주의적 외교술을 그대로 현대에 적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냉철한 상황 판단과 실용적인 노선은, 외교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에도 어떤 시사점을 주지 않을까 싶다.
로저 크롤리는 베네치아라는 도시국가와 그곳의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면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베네치아는 불모지였지만 분명히 풍요로웠다. 부는 흘러넘쳤지만 마실 물은 모자랐다. 엄청나게 강력했지만 지리적으로는 취약했다. 봉건주의는 없었지만 지독할 정도로 통제되었다. 그곳 시민들은 냉정하고, 낭만적이지도 않았으며, 종종 냉소적이었지만 환상의 도시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발휘했다.” (507쪽)
바로 이런 양면적인 면들이 베네치아를 이해할 수도 있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게도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