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자 케빈 엘리엇은 과학이 가치와 무관하다, 혹은 가치중립적이라는 생각은 이상에 가깝다고 단언한다. 이는 과학에 대해서 가지는 일반적인 인식과 상충되는 면이 없지 않다. 왜 우리가 과학을 신뢰해야 하는가? 혹은 신뢰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했을 때, 과학이 가치가 배제된 질문과 답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빈 엘리엇은 실제로는 과학이 가치를 배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또 가치를 포함하고 고려했을 때 더욱 신뢰받는 과학이 된다고 설파한다.
케빈 엘리엇은 가치의 태피스트리(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라는 은유를 통해 과학에서 가치가 하는 역할을 하나씩 분석하고 있다. 그 역할이란, 연구할 주제의 선택, 특정 주제를 연구하는 방법론의 결정, 특정 맥락에서 과학 연구의 목적 결정, 불확실성에 가장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의 결정, 결과를 설명하고, 어떤 프레임으로 전달하는지에 대한 결정이 그것이다. 이 다섯 가지의 역할은 사실상 과학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전 과정에 걸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데서, 그것을 어떻게 연구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구의 결과를 어떤 언어로 설명할 지에 대한 것을 포괄한다. 여기서 하나 빠진 부분이 있다면 연구의 과정에서 데이터를 어떻게 다룰지에 대한 것이 있는데, 이것도 사실상 이 책의 논의에 중간 중간 스며들어 있다.
이러한 과학에서 가치가 하는 역할은 각각 몇 가지의 사례를 통해 입증하고 있다. 가장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연구 주제의 선정과 관련해서는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지능의 차이에 대한 연구, 정부의 연구 자금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문제, 민간연구, 특히 제약회사에서 사회적 우선 순위와 관련 없이 돈이 되는 연구를 하는 문제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결과를 전달하는 언어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행동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요인에 관한 연구를 전달하는 프레임(여기서는 많은 책에서 다루는 프레리들쥐의 바소프레신, 혹은 옥시토신에 관한 연구를 소개한다), 그 지역에 원래 없던 식물이나 동물을 표현하는 방법, 즉 외래종, 침입종 등의 용어를 선택하는 문제(이는 환경 교란 물질, 호르몬 활성 물질과 같은 용어의 선택 문제와도 연결된다), 인종을 분류하고, 환경을 규제하는 범주에 대한 평가 문제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실제의 사례는 과학이 가치와 무관하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과 함께 가치가 태피스트리처럼 얽혀 있다는 것, 가치를 하나의 실로 뽑아내듯 분리되어 연구할 수 있다는 것 등등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렇다면 과학에 가치를 정당하게 통합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참여, 투명성, 대표성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심이 되는 참여란 말 그대로 과학의 활동에 여러 가지 방식과 방향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시민 집단들의 상향식 참여, 과학자들, 과학 집단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하향식 참여, 학제간 연구에의 참여, 그리고 제도적 규칙과 정책에 대한 참여 등 4가지가 그 참여의 방식으로 제시하고 있다. 투명성이란, 과학 연구에서 가치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가치에 치우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상황에서 제시되는 것이다. 즉,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따져볼 수 있도록 과학의 가정들을 투명하게 다루는 것이 과학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표성이란, 연구에 영향을 주는 가치가 우리의 윤리적, 사회적 우선순위를 대표해야 한다는 말인데, 사실상 이는 사회적 동의를 의미하기도 하면서 전문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제약회사의 연구 순위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요구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표성을 갖지 못하며, 의회가 과학 연구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국회의원이 과학 연구에 전문성을 가지지 못하므로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는 의미다.
책을 읽으며 ‘좋은’ 과학, ‘좋은’ 연구란 무엇일까를 내내 생각했다. 내 연구의 ‘가치’에 대해서도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내 연구가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대표하고 있느냐, 어떤 편향을 지니고 있으며, 그 가치와 편향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다. 실제 현장에서 과학 연구를 수행하는 과학자들은 이런 문제를 잘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치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가치가 배제되어 있지는 않다는 저자의 주장에 쉽게 고개를 저을 수는 없다. 저자는 가치가 하는 역할이 명시적인 경우보다 무의식적으로 과학의 모든 과정에 스며들어 있다는 식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가치를 의식하면서 연구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를 것이다. 가치가 과학에서 하는 역할을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역시 다를 것이다. ‘좋은’ 연구를 impact factor가 높은 저널에 내는 것‘만’이라 본다면 이런 논의는 의미 없을지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