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주에 위치한 휴스턴대학교 역사학 교수 로버트 자레츠키는 코로나-19가 닥치자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야 했다. 무엇보다 강의가 비대면으로 바뀌었고(나도 경험한 것이지만 놀랄만큼 금방 적응이 되었다), 인근의 요양원에서 자원봉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몇 달이었지만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문학책을 꺼내들었다. 전염병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었다. 고대 그리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에서 카뮈의 『페스트』까지. 고립과 단절을 강요하는 21세기 전염병의 시대에 역사 속의 전염병을 대하는 과거의 저자들은 과연 그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많은 작품을 두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 대니얼 디포의 『전염병 연대기』,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그리고 후기에 다루지만 메리 셸리의 『최후의 인간』. 그렇다면 이 작품들에 등장하는 전염병들은 어떤 것들일까?
투키디데스의 작품에서는 아테네 대역병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시대에는 안토니누스 역병이 창궐했다. 이 역병의 정체는 많은 이들이 의견을 내놓은 바가 있다. 통일된 의견은 없다. 다만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테네 대역병은 장티푸스, 안토니누스 역병은 천연두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다만 그렇게 보더라도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다). 반면 몽테뉴, 디포, 카뮈의 책의 배경이 되는 전염병은 동일하다. 가래톳 페스트. 비록 대니얼 디포의 경우에는 런던 대역병, 카뮈의 경우에는 갈색 페스트라고 적고 있지만, 결국은 페스트라는 것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자레츠키가 전염병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갖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많은 전염병들을 고루 다루지도 않았고, 다루는 전염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쓰고 있지 않다.
자레츠키가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떤 전염병이든 상관없이 사회의 구조를 파괴하고, 인간의 삶을 황폐화하는 전염병이 인간의 마음과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아테네 대역병은 아테네의 법과 제도를 삼켜버렸다(페리클레스의 민주정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로마 황제이면서 철학자였던 아우렐리우스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를 남겼고, 디포에게 런던 대역병은 사회의 폭정을 드러낸다. 지금도 그렇지만 통계 속 숫자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는 유리되어 매우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카뮈의 페스트는, 많은 평론가들이 하나의 상징이라고 하지만(나치를 갈색 페스트라고 했다), 그런 상징을 드러내는 페스트라는 전염병은 무시무시하고, 적나라하다.
이렇게 작품들을 통해서 본 전염병은 인간 삶을 황페화시키고, 사회를 흔들어댄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너무나도 막대해 실감이 나지 않지만, 그 숫자에 내 가족이 포함된다면 ‘1’이라는 숫자도 너무나도 참혹해진다.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속에서 고립과 절망을 많이 느꼈다. 그 고립과 절망은 이미 저자들이 이야기했던 것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고립과 절망이 새로운 것인 양 받아들인다. 우리는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지만, 카뮈도 이야기하고, 저자도 이야기하듯 ‘승리는 지속되지 않는다’(이 책의 원제가 그렇다. “Victories Never Last”). 사실 전염병 자체와의 싸움은 차마 승리라 부를 수도 없다. 페스트가 물러난 게 인간의 능동적으로 페스트와 잘 싸워 이긴 것이 아니었고, 최근의 SARS 역시 그냥 이유도 없이 사라졌었다. 코로나-19 역시 우리는 싸웠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버틴 것일 뿐이었다. 다만 우리가 ‘승리’를 이야기한다면, 이 전염병에도 파괴되지 않은 사회, 끊어지지 않은 인간관계의 틀 같은 것에 관해서일 텐데, 과연 우리는 승리했는지 의문이다.
전염병은 다시 온다. 이건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어떤 것이 올지 예측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 예측은 그저 예측일 뿐이며, 그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예측하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또한 그 전염병이 또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뀌어 놓을지도 모른다. 또 우리는 어떻게 거기에 대응할 지도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자레츠키가 보여주는 작품들에서 인간의 전염병에 대한 대응의 틀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는 않다. 그 범위를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고, 그래서 문학은 경고하고, 또 위로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