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의 글에서 책에 관한 얘기를 읽고, 책을 사서 읽었는데, 그 사람이 받은 인상보다 더 좋은 느낌을 가지게 된 것 같다면... 고마움과 함께 그의 안목, 더불어 나의 안목(그를 믿었으니)에 뿌듯해진다. 이은화의 『사연 있는 그림』이 바로 그런 경우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그림에는 사연이 있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사연도 있다. 화가의 사연이 그림의 사연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의 경우가 그렇다. 다 빈치가 (아마도) 조콘다 부인을 그리고, 그 그림을 평생 간직한 것은 다 빈치의 사연이지만, <모나리자>라는 그림이 전 세계적 유명세를 타게 된 도난 사건은 다 빈치의 사연이 아니라 <모나리자>라는 그림의 사연이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라는 그림을 감상할 때(과연 그게 가능한지와는 별도로) 화가의 사연과 그림의 사연을 안다는 것은, 그저 앞사람의 머리 너머로 보이는 작은 그림 조각을 봤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렘브란트의 <야경>(이 책에선 주로 <야간 순찰>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고 있다)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의 원래 제목과 색감이 어땠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 이 그림이 어떤 운명을 거치며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위치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도 그 앞에 섰을 때의 막대한 감흥에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실제 나의 경험이다). 그림을 그린 화가에도 희노애락이 있었고, 그림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그림이 거쳐온 사연마저도 희노애락 비슷한 것이 있다. 우리는 그림에서 물감의 흔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연을 읽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가령 이런 것이다. 니키 드 생팔이라는 화가가 있다(솔직하게 이 책 전에 나는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들어본 적이 있었을지라도 나는 기억을 못한다). 이 책에 소개한 다섯 명의 여성 화가 중 한 명인 그녀는 ‘사격 회화(Shooting Paintings)’라는 분야를 개척했다고 한다. 물감 주머니가 숨겨진 흰색 부조 위에 총을 쏘아 물감이 튀고 흐르도록 하는 추상화다. 행위의 폭발성과 작품의 의외성이 한데 어우러지는 셈이다. 그런데 그걸 ‘총’이라는 매체에 주목을 하고, 색감을 감상하는 것만이 그녀의 그림을 이해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사연’이 이야기한다. 그녀는 ‘사격 회화’를 시작하던 해에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1961년 난 아버지를 향해 총을 쏘았다. (...) 내가 총을 쏘는 이유는 총 쏘기가 재미있고 나를 최고의 기분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재미로? 그게 아니다. 아버지를 쏜다? 그렇다면 패륜? 혹은 정신학적 의미? 역시 아니다. 그녀는 열한 살에 아버지에게 당했다. 그녀에게 총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이자 복수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또한 자기 치유의 방식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녀의 행위와 그림은 다시 보인다. 사연의 힘이며, 의미다.
서른 두 명의 화가와 그들의 사연을 다루고 있다. 몰랐던 화가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즐거운 책읽기로 이끌었지만, 알고 있는 화가의 몰랐던 사연은 더욱 흥미롭다. 화가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모두 추적하지도 않고, 그림 하나를 세세히 분석하지도 않았지만, 화가의 삶이 박히고, 그림의 의미가 다가왔다. 그림을 보는 눈이 조금은 깊어졌다. 더불어 한 사람의 인생이 표출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