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과학자의 10년 독서

이원식, 『호기심 많은 로맨틱 과학자의 독서 기행』

by ENA

제목만 보고, 여러 가지를 의식하고 궁금증이 든다. 우선은 ‘과학자’. 이 양반은 과학자라는 얘기인데, 무엇을 전공했을까? 그런데 ‘로맨틱’의 의미는 무얼까? 그러니까 ‘로맨틱 과학자’는 도대체 어떤 과학자일까? 과학자니까 호기심이 많다는 것은 당연히 인정할 만한데(실상을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독서 기행’이라니. 이 양반의 독서의 범위는 어떻게 될까? 과학자이니 과학에 대한 독서일까? 그런 너무 뻔하니 인문학 분야의 독서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 내지는 의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저자 이원식 씨는 삼성전자가 별 볼 일 없는(?) 회사일 때 입사해서 세계적 기업이 되는 과정을 함께 하고 부사장으로 퇴임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연구하는, 그런 과학자와는 조금 결이 다른 셈이다. 따지자면 공학자이고, 기업가라고 해야 더 어울릴 듯하지만, 과학자라는 게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자라는 호칭을 그렇게 좁게만 볼 이유도 없으니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로맨틱 과학자(Romantic Scientist)’라는 건 SNS 계정에서의 별명이다. 하지만 그는 romantic을 ‘낭만적’이라는 번역된 말의 뜻으로 쓴 건 아니고 본래 유럽에서 쓰였던 대로 ‘인본주의적’이라는 뜻으로 썼다. 하지만 ‘낭만적 과학자’라는 해석도 싫어하지는 않는단다. 그렇다면 그의 ‘독서’도 대략은 해결이 된다. 물론 과학에 대한 책도 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퇴직 후 10년 동안의 독서와 독서에 따르는 과학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글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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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독서는 말 그대로 광범위하다. 어쩌면 책 한 권에 다 담는 것이 좀 무리란 생각도 든다. 책은 우주와 지구, 생명에 대한 글, 인류 문명의 역사에 대한 글, 그리고 인생 경험과 독서, 사유에 바탕을 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통일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해가 되는 것은 저자가 이 책이 자신의 마지막 책이란 생각으로 썼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읽고 공부한 것을 정리하고 있고, 소중한 경험을 고백하고 있고, 또 자신이 가진 생각을 드러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지면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사실 과학 쪽의 설명에는 그다지 특색이 없어 보인다. 충실하게, 그것도 주로는 (영어로 된) 서적을 통해 각 분야의 기본적인 내용을 공부했고, 그것들의 의미를 파악했다. 보편적인 과학 교양서에서 보는 내용이고, 다만 그의 개인적인 소회가 조금 눈에 띨 뿐이다. 하지만 그의 역사와 사회, 미래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이 오히려 재밌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실례되는 표현일 지도 모르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다고 할 수 밖에 없는데, 그건 그냥 ‘지당한’ 얘기만 하고 있지 않아서 그렇다. 어떤 부분의 진보 쪽의 시각인 듯 하지만, 또 다른 쪽으로 보면 그렇지 않고. 그렇다고 딱히 꼴보수는 아닌 인식이고, 제안도 아니다. 저자의 날 것 같은 생각과 오랫동안 벼려온 생각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인데, 그의 (교육 제도, 경제 체제, 통치 체제, 남북통일, 전쟁에 관한) 제안들은 의미 있게 생각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그 생각들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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