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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09. 2018

[비빔국수 그리고 임시틀니]

[임시틀니라는 것이 있다. 위 아래 치아를 몽창 다 빼고나서, 한달정도 지나면 숭숭 뚫려있던 이를 뽑은 자리가 서서히 치유되며 막히게 된다. 이렇게 잇몸이 다 아물어야 비로서 그 더이상 변하지 않는 잇몸틀을 지지대 삼아 본을 떠서 본틀니를 만드는데, 치아가 하나도 없는 동안 사회에서 사람을 만나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 한두달 정도의 기간동안만 사용하고 버리게 되는, 고맙고도 미안한 틀니가 임시틀니인 것이다.]

“아니, 전번에 해드린 그 임시틀니는 쓸만 하신거에요? 벌써 3년이나 되었잖아요..”


 몇번을 그냥 지나가면서 눈인사만 했던가. 길거리에서 국수를 삶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머쓱하게 말한다. 내가 해드린 임시틀니. 그 임시가 장기간이 된 셈이다.


“에이, 원장님, 못써요. 못써. 이거봐요 계속 흘러내리잖아요. 바빠서 내가 간다해놓고 치과에 가지도 못했네요..”


라고 말하는 사이, 벌써 위의 틀니는 입 밖으로 튀어나올듯 헐렁거리고 있다. 위의 틀니가 툭 하고 입천장에서 떨어져, 아랫입술을 물고있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아마도 왜 저 할머니는 윗니로 아래입술을 꽉 깨물고 있느냐고 할 터이다.


 “비빔국수 한그릇 주세요. 저는 그 오이나 상추같이 올리는 그거 고명인가? 그거 좀 많이 올려주세요. 하하.. 어? 안에 자리가 없네요?.. 좀 밖에서 기다리다 들어가죠..”


자그마히 세 개 놓여있는 실내 테이블이 손님으로 꽉 찼다. 얼마 전에도 지나다가 아내에게, ‘한번 들어가서 인사라도 드리자구요. 한달 쓰고 버려야하는 임시틀니로 벌써 3년째잖아. 궁금하니 물어나 봅시다.’.. “아휴, 좀 환자분도 민망해할테니 이번은 그냥 지나갑시다.”.“흠..”


“우리 아들놈이 집에서 언능 치과가지 않고 뭐하냐고 늘 말하는데, 제가 시간이 안나서..”
멋적게 말하시는데, 항상 이런 경우 약속이나 한 듯, 어르신들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그럴 수도 있겠지..

“네, 그럼 임시틀니가 잇몸이 줄어들어 헐거우신거니까, 잠시 두세시간 시간내서 오시면, 좀 수리를 해서 잠시 잘 쓰게 해드릴게 한 번 오세요. 오늘 잘 먹었습니다. 잔돈은 괜찮아요.”


만원을 식탁위에 두고 도망치듯 나온다. 목장갑 낀 손으로 나의 팔을 힘있게 꽈악 잡으며, ‘아니, 그건 안되지!’ 말씀하시다가, 멀어지는 제 뒤통수에대고, “감사합니다~.”하고 거리 가득히 소리를 지르시는 할머니.

국수처럼 길다랗게 수명이 늘어난 요즘.
국수를 맛나게 만드는 할머니의 평생의 요리비법이야 
프랜차이즈 음식점의 화려한 메뉴 비해 하찮은 기술이 된 지금.

3천원짜리 국수를 천그릇은 팔아야 틀니 하나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생활비쓰고 어쩌고 하면, 아마 이천그릇을 팔아도 쉽지 않은 돈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중에 틀니 하러 오시면, 천 번은 제가 와서 먹어야 보답이 좀 되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서글퍼진 마음에, 병원 직원들을 앉혀놓고 이야기한다.

‘별거아닌 듯 우리가 만드는 틀니지만, 천그릇의 국수를 팔아야 하나 장만하시는 분도 계시니, 다들 좀 더 정성을 기울입시다.‘ 기분내키는 대로 아무말이나 지껄여대는 원장의 습관에 이젠 모두 익숙해진 직원들. 더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임시틀니와 그 주인과의 무슨 전생에 질긴 인연이 있었던지, 한달이면 떠날 임시틀니가 벌써 삼년째 입안에 놓여 있다. 틀니는 입안에서 덜그럭 덜그럭 떨어지고 떠다니며 나가겠다고 하지만, 입술로 붙잡고 혀로 붙잡아두길 삼년, 참 길고도 긴 서로의 인연이다. 예전에 식사배달을 하시던 할아버지 이후에, 임시틀니를 이렇게 수년간 쓰신 분이 또 오랜만이다. 이럴때면 생각해보기도 한다. 에잇, 임시틀니를 보다 더 엉망으로 만들었어야 본틀니를 만들러 오셨을텐데, 오히려 적당히 만들어 놓으니 환자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구나..

치과의사가 자신이 치료한 환자가 불편하게 지내는 것을 직접 목격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혹한 경험입니다. 식당주인인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그자리에서 배탈이 나는 것을 목격한다던지, 자동차 수리공이, 자신이 수리하고 지금 막 출발한 차가 눈앞에서 고장나 전복된다던지 하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란, 잊혀지지 않을 경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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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끓는 국수 육수물 앞에서, 할머니의 옷에 벌써 여름이 온듯 땀이 흥건합니다. 
3년 전, 친척 결혼식에 가야한다며, 부랴부랴 거금을 들여 임시틀니라도 만들어야겠다고 딱 한달만 쓰고 본틀니 만들러 오겠다고 하신 할머니.
그게 벌써 3년이 되었네요.

시간이 없다는 말씀.
자식이 돈 준다는데 내가 바빠서 못간다는 말씀.
아이고 내가 이제 막 가려고 했는데.. 라고 하시는 말씀.
그대로 믿는 편이 이제 제 마음이 편하네요.

위 턱의 잇몸이 줄어들어 입을 벌리면 임시틀니가 툭! 하고 떨어집니다. 중력이란 놈이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중력이 나를 당기고, 당신을 당기고, 내가 애처로와하는 할머니의 틀니도 잡아당기고.. 결국은 우리 모두를 100년 안에 땅 속으로 잡아 당기게 되겠지요.

길다란 국수.
어찌나 귀한 밀가루로 만든 소중한 국수라서, 예로부터 잔치상에 올렸다죠.
환갑잔치에는, "길다랗게 늘어나라 남은 날들아."
결혼식때는, "길다랗게 늘어나라 부부의 인연아."
이렇게 저렇게 우리는 “언제 국수 먹게되는 거야?”라는 말을 결혼 언제 하냐는 표현으로 에둘러합니다.

국수를 먹고 또 먹어, 장수를 기원하고 또 빌어, 이제는 평균 연령 82세의 고령화 사회.
국수마는 할머니는 늙어서도 쉬지도 못하고, 사지는 건강한데, 치아가 하나도 없는 불편에 놓이게 되는 불완전한 장수. 
평생을 남에게 국수를 먹이며, 남의 장수를 기원하여 주었으니, 복도 참 많이 지은 할머니.

착한 가격. 부담없는 가격으로 장사하시다 보니, 결국 자기에게 착한 일을 할 돈은 마련하기가 요원합니다. 모두가 노력한 만큼의 적정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은 언제 올 수는 있을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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