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말로는 누군가 노래를 부른다네요. 아이들과 함께 들으러 갔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저라서, 판소리부터 클래식까지 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빗소리도 음악으로 듣고, 아기의 코고는 소리도 멜로디로 들려서, 유일한 취미라면 음악을 듣는 것 정도라 할 정도입니다. 클래식을 하시던 분께서, "음악은 세계인의 언어"라는 말씀을 하신 기억이 납니다. 고운 멜로디는 다른 번역과 설명없이, 언어가 다른 누구에게라도 감동을 주니까요. 서둘러 아이들을 씻기고, 시간에 맞춰 약속된 강당으로 가보니, 음악을 들으려 서른명이 좀 안되는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누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객석 한 귀퉁이에 어떤 할머니께서 손으로 뜬 흰 니트 모자를 다소곳이 쓰고 계시네요. ‘저 분도 음악을 좋아하시는가보다.’ 하고 생각했죠. 혈색도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는데, 척보니, 그래.. 투병하시나보다. 보통 암투병을 하시는 분의 경우에, 가발이나 모자, 두건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어머니도 암 투병 중이실 때, 이웃집 아주머님께서 선물로 가발을 사서주셨다고 참 고맙다고 말씀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의 죽음이란, 철없는 자식이 겪는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기 때문에, 돌아가시기 전 하시는 행동 그 하나하나의 의미를 잘 깨우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 암투병을 하시는가본데, 봄날에 지겨운 병실말고 이런 음악감상을 하는 자리에 한번 오는 것도 기분전환도 되고 좋지.. 잘 하셨네..’
피아노 반주자가 반주를 시작합니다. 먼저, 어떤 아마추어 남자분이 노래를 마치고 한차례 박수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의외의 장면이 벌어집니다. 흰 니트모자를 쓴 그 할머니께서 기다리셨다는듯이 무대로 올라가시는거예요. 사회자가 조심스럽게 그리고 위트있게 말합니다.
“다음은, 몸이 조금 불편하신 소프라노 김멘토할머님께서 노래를 불러주시겠습니다. 노래제목은, ‘그대사랑’ 황덕식 곡, 권선옥 시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몸이 아주 '조금' 불편하십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흠.. 흠..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노래를 할 건데요, 연습을 많이 했더니 목이 좀.. 상태가 안좋네요.. 역시 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안되나봐요. 무대에 오르기전에 목이 쉬어버리니 낭패네요. 그렇지만 즐겁게 들어주세요.. 하하하..”
청명한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고, 할머님의 노래가 시작됩니다.
“잎새의 흔들림에 우연히 마주한 동트는 새벽녘 처음 같은 그대 사랑~ 꽃잎이 떨어지며 남겨둔 향기인양 그리움 남아 있어 놓지 못했네~“
온 몸이 하나의 작은 악기인듯, 소리를 잘 밀어내고, 흔들어내면서 좋은 소프라노 음색이 나옵니다. 가사의 발음은 좀 부정확하고, 어딘지 힘이 좀 없는 목소리이긴 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목소리였습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습니다. 말기암에 투병중인 그 할머님은 좋아질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의 몸 상태라는군요. 암이 많이 체내에 전이가 되셨나봅니다. 본인의 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사람. 직업이 바로 의사이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몸상태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마음이 나셨다니, 마음깊이 경외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삶의 끝이 보이는 지금, 그 김멘토 할머니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쉬지않고 요양병원에서 보조적인 의사로서, 본인의 진료하는 본분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다시 돌아와서 본인도 역시 항암투병을 하고계신 상황이신거죠.
같이 꺼져가면서 진료하는 의사라니, 끔찍하고도 낭만적입니다. 그나마 요양병원의 진료강도가 높지 않아 한바퀴 회진하고 다시 돌아와서는 본인의 몸을 추스르고 하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이 할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전해 듣기는 했었지만, 직접 노래를 듣고나니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어떻게 잘 죽을 수 있을까?‘에 관한 저의 고민은 사춘기 이후 저에게는 끊이지않은 고민이었습니다. 혹자는, 예기치못한 순간의 갑작스런 죽음이 가장 본인에게 축복된 것이라고 말하고, 혹자는, 생을 마무리할 준비의 시간을 지녀야 행운이라고 말합니다. 병으로인한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는 순간, 환자는 그 순간부터 순서대로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단계를 거친다고하죠. 인간이라면 대부분 그럴겁니다. 특이하게도 제 어머니는 암선고를 받는 순간 의사 앞에서 웃으면서 “네 선생님 알겠어요. 이겨내봐야죠.하하..”라고 말씀하시고, 도저히 본인의 몸이 안되겠다는 판단을 하시고서는 중간단계를 겉으로 내비치지않으시고 수용의 단계로 들어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투병중에도 늘 자랑처럼 말씀하셨고, 저도 좋게 받아들였었죠.
저에게는 낯선 김멘토 할머니께서는, 제가 처음 들어보는 노래 ‘그대사랑’ 이라는 곡을 온 몸으로, 온 힘을 다해 들려주셨습니다. 그 할머님과 저에게는 소중한 하루의 순간이었습니다. 아니, 일생의 순간이었죠. 저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반복하여 듣고 있으니, 이제 한 열번쯤 들어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의미있는 노래는 마치 램프속의 지니를 불러내듯, 하나의 기억을 떠올려줍니다. 아마도 이 노래가 들려오면 늘 이 김멘토할머니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이제 환자의 투병중 심리단계중 아마도 ‘수용’의 단계에 계신가봅니다. 참 다행입니다. 충분히 남아있지 않은 소중한 나날들을 아름답게 보내는 방법을 지혜롭게 잘 찾으시고, 또 마지막까지 이렇게 남아있는 관객에게 몸소 하나의 삶을 잘 마무리하는 하나의 모델이 되어주시니 말입니다.
참 감사하게도 말기암환자의 소프라노곡을 들었습니다. 그래, 나도 그날을 위해서 아름다운 노래한 곡 쯤 연습해두어야 할 것 아니야? 하는 생각마저듭니다. 많은 재산을 모은 이 보다도, 무엇이 잘났다고 우쭐대는 사람보다도, 오늘은 이 할머님의 여유로운 마음이 부럽습니다.
책 한권, 영화 한편, 많은 대화들,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 그 어떤 것보다도 많은 생각과 깨달음을 준 노래 한곡을 들었습니다. 5분이 안되는 시간을 통해서, 백마디 말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옆에서 영문도 모르고 노래를 듣는 제 자식들을 봅니다. 제 자식들은 영원히 살았으면 하는 바보같은 소망도 가져봅니다. 여러분도 같이 들었으면 참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