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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어버이날. 그리고 [베이비박스]-


“허허.. 김서방.. 나는 잘 모르겠네.. 세상에 별게 다 있구만그랴.. 글쎄..”

 장모님께서 혀를 차십니다. '아기는 여기에 버리세요.' [베이비박스]. 말도 많고, 손가락질도 많이 받는 그 [베이비박스]입니다. 엄마의 따스한 자궁에서 나와서, 호흡이 터지고, 세상의 때묻은 공기를 흡입하기도 벅찰텐데, 이 아기가 가야할 곳은, 베이비박스입니다. 그나마 겨울에 차가운 길바닥에 버려져 얼어죽지 않게 되어 신께 감사하다고 이 아기는 말해야할까요. 추운 겨울 새벽. 온기가 있는 베이비박스에 미혼모가 가슴졸이며 아기를 넣으면, 윗층에 시끄러운 알람이 울립니다. 24시간 긴장하며 대기중인, 천사의 다른 모습인 목사님이 뛰어내려와 아기를 안고 갑니다. 서로 얼굴을 보고 주고받지는 못하는 희한한 동물인 인간입니다. 익명성. 그것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습니다.


 “김원장님! 뭐라구요? 아기를 버린다고 무조건 그 엄마만 욕먹을 일입니까? 우리 사회에서 어디 고교생 미혼모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요? 그럼 철없이 임신하게 된 여고생의 평생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겁니까? 세상이 도대체 배려가 없어요..” 낙태와 매맞는 여성등의 여성인권에 관심이 많으신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제게 호통을 치십니다.


 출산율 저하라고 떠들면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아기도 있는가봅니다. 저의 어머니는 신년이되면, 어디가서 사주를 보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평생을 들고다니시던 아주 작은 수첩하나가 있었는데, 그 수첩에는 우리 형제들의 생년월일시가 빼곡이 써 있었습니다. 아주 낡은 작은 수첩에 볼펜으로 정성스레 적어둔 글씨였습니다. 한자로 태어난 시를 적어둔 까닭에, 관우 ‘유시‘라고 써있었는데, 그 시간이 어릴적 늘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베이비박스에 들어가는 아이는 누가 그렇게 챙겨줄지 모르겠습니다. 어버이날이면, 박스안에 아기를 넣어 두고 간 엄마는 마음 한 켠이 시려오겠지요. 또 어버이날이면, 저 박스에 버려진 아기는 엄마의 얼굴이 궁금해질 것입니다.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누군가가 원망스러울 것입니다.


 "미혼모인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엄마는 왜 아기를 버렸을까.. 우리 사회가 저는 때로는 답답합니다. 제가 잘 아는 여인이 미혼인데 아기를 낳았습니다. 결혼직전에 임신하였는데, 결혼식을 올리기전에 너무 신랑에게 실망할 일이 생겨서, 결혼을 포기하고 그냥 아이를 낳았습니다. 세간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견디고 살기란 참 쉬운일이 아닙니다. 물론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그래도 아직 제가 사는 곳처럼 작은 소도시에서는 더욱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여인을 통해 비로소 저도 처음으로 미혼모가 참 용기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간의 제 편견이 부끄러워집니다. 저 역시 미혼모에게 가시돋친 시선을 던지는 가해자였던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넣으면서 행복할 엄마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 여자는 죄인이니 마음껏 돌을 던지라는 누군가의 말도 틀렸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미혼모를 베이비박스로 떠밀었는지요? 그건 사회적 편견에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오히려 등을 두드리며 아이를 혼자 키우기 어려우니 도움을 주려나서지는 못할 망정, 색안경을쓰고 바라보기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아주 못된 습관이지요. 주변의 많은 지인이 이렇게 흘겨보고있는 와중에, 아기를 아무 거리낌없이 키울수 있는 미혼모는 드물것입니다. 저라도 미혼모의 삶을 살기란 쉽지않을 것 같습니다. 겉으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마음속에, 당신은 미혼모야. 당신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야 라고 낙인을 마음속에 찍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무언의 폭력이 많은 미혼모를 베이비박스로 떠미는 잘못된 힘입니다.


 지금껏 한국에서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300명중 100명가량은 다시 엄마가 찾아갔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100개이상의 베이비박스가 운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좀더 깊이 생각하여야합니다. 인권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아기를 키우는데 사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며, 그것이 왜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면 안되는 것이냐.. 저는 나이가 들면서, 손쉽게 남을 비난하는 경우가 점점 없어집니다. 다들 사연이 있고, 그런 상황이라면 저라도 별 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어버이날.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장인, 장모님과 함께 살지요. 조금 전 야간진료를 마치고 어두운 밤길을 걸어오는데, 카네이션 아주머니가 서 계시네요.


 “아이구, 잊을뻔 했는데 판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가슴에 다는 맛이 좋아서 생화를 삽니다. 제 아이들에게 달아드리라고 하는게 재미나겠죠. 생화가 시들까봐 물컵에 담아 둡니다. 카네이션을 보면서 잠시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니 얼굴도 한 번 떠올려봅니다. 좀 죄송스럽네요. 엄마 아빠 미안.. 그리고는 뜬금없이 오늘 읽었던 베이비박스 기사를 떠올려봅니다. 서로 세상에 지척으로 가까이 살면서 평생을 그리워할 얼굴들. 

 누가 그들을 떼어두었을까요. 미혼모를 향한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우리들. 부족한 중.고생에대한 피임교육. 여대생등의 미혼모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주는 보육보조 시스템의 부재..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퇴근길을 걷습니다. 호화스런 술집들도 많고 너무나 값비싼 차들도 많이 보입니다. 우리사회가 정말 돈이 없어서 미혼모를 못돕는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터벅터벅 걸으며 내가 좋아하는 나의 누나에게 전화를 합니다. "관우야, 우리나라는 어린 미혼모가 아기를 버리면 시집 잘 가서 행복해지는 여자의 삶이고, 미혼모가 용기내어 아기를 키우려고 마음먹으면 한없이 삶이 무거워지는 것이 현실이야. 옆에서 응원은 못해줄 망정.."


 베이비박스. 이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믿고 싶습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싶은게 아닙니다.우리가 가진 차가운 미혼모를 향한 시선만이라도 닦아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베이비박스의 목사님은 오늘도 베이비박스를 엽니다. 아이를 버리고 간 미혼모가 박스안에 같이 놓아 둔 편지와 아기소지품을 꺼내 휴지로 닦고 또 닦습니다. 혹시나 버리고 간 미혼모의 지문이 남아 경찰서에서 영아유기로 문제가 될까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의 따뜻한 손길만큼은 못하겠지만, 우리는 그저 우리의 비뚤어진 미혼모를 향한 마음만이라도 찬찬히 닦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언젠가는, 미혼모들이 남 앞에서 당당해지기위해서 아침마다 노력할 필요가 없어질런지도 모르잖아요. 남에게 손가락질 하기 좋아하는 남자들. 그러고보면 '미혼부' 라는 말은 없네요. 여자 혼자 임신할 수는 없는 것일텐데, 남성위주의 사회는 그저 여자에게만 가혹할 따름입니다. 어버이날.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들이 웃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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