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하고 거친 손이 틀니를 살포시 쥐고 있습니다. 자그마한 얼굴을 가진 할아버님께서, 조물락 조물락 만지작거리십니다. 스무살 아가씨 치아처럼 예쁜 틀니를 해드려서, 주름진 얼굴과 어울리지 않아 좀 죄송스럽네요. 하지만, 그래도
'치과의사라는 직업도 어쩌면 괜찮은 직업이야..'
라고 스스로 생각해보는, 저에게는 흔치않은 소중한 시간입니다. 땡볕 아래에서 양손이 부르트도록 지은 농산물을 스스로 씹을 수 없다는게 얼마나 슬픈 일이겠어요. 거친 손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시리지만, 그래도 한 개의 치아도 없는 입에 틀니를 넣어드렸으니, 뿌듯하기까지 합니다. 평생을 노력하신 두 손. 그 상처 가득한 손을 그윽히 바라보노라면, 힘없이 창백한 저의 파렴치한 손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오늘 아침의 농사일로, 너무 바쁘셔서 씻지도 못하고 오신 손입니다. 제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당당한 손입니다. 이 할아버지에게 불로소득이란, 아마 먼 나라의 이야기이겠지요. 땀흘려 일한 노동의 가치가 점점 퇴색되어지는 시대이지만, 할아버지는 초롱초롱 맑은 초등학생의 눈으로 말합니다.
“허이.. 원장님.. 틀니 여기가 좀 아파..여기 모서리가 말야 씹으면.. 처음엔 참~ 좋았는데, 한 2-3년 지나니, 여기가 아프네. 내 미안시러워서 안올라고 해꾸마. 아무리 안올라고 해도 너무 아파서 내 왔으요. 좀 다듬어주이소. 내 생각엔, 요기 요 모서리만 사~알짝 다듬으면 될 것 같아. 너무 많이 깎지는 마! 아까우니께.”
혼자 집에서 연구도 많이 하셨나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이 작은 소도시에서 하는 진료가 감사합니다. 예전에 잠시 서울에서 진료했을 때, 같은 경우에 저는 멱살을 잡히지 않으면 다행이었습니다. 틀니를 쓰고 시간이 지나면, 잇몸의 형태가 변화해서 조금 아픈 부위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그것을 뭔가 치과의사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라고 불신을 하고 다짜고짜 성질부터 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니, 평생을 써도 문제가 없어야지 왜 아파? 이게 한두푼 하는 물건도 아니고 내.. 참..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 줄 아는겐지.. 쯧쯧..”
이 곳에서 살면서 참 고맙고도 감사한 것은, 또는 참 죄송스러운 것은, 이런 경우에 오히려,
‘원장님. 아프다고 말씀드리기 미안해서 못 왔어요.’,
‘원장님~ 참 자꾸 아프다고 와서 죄송합미더..’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미안하시다며, 통통한 고사리도 한웅큼, 얼린 곶감도 한봉지, 하우스의 딸기도 한소쿠리, 참 귀한 것을 들고 오십니다. 제가 먼저 “미안하긴요! 절대 그런 생각 마시고 항상 불편하면 나오세요. 당연히 제가 해드릴 일인데요!” 하고 말씀을 드려야, 그나마 좀 맘 편히 나오시네요.
“내 나이가 팔십 하고도 둘이야. 농사? 아직도 짓지. 어제도, 오늘도. 농사? 재밌지! 고구마도 심고, 감자도 심고.. 얼마나 재미난데! 허허허! 그런데 다리가 잘 안움직여 이젠. 나이가 들어서 다리가 질질 끌린다구. 그래도 이 틀니가 있어서 밥도 잘 먹고 참 좋았는데, 아파서 온거야. 빨리 가야해. 오늘도 농사일 해야해! 내일 비가 온다잖아? 원장님은 모르겠지만, 나는 아주 마음이 급하다구!”
저의 장인어른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비료푸대 좀 옮겨드리고, 이런 저런일 하다가 도망치듯 집으로 왔지요. 저는 도저히 못하겠던 농사일이었습니다. 땀흘려 일하시는 농부님들은 적당한 댓가를 받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참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고려, 조선시대의 대지주와 소작농의 관계보다도 더 격차가 많이나는, 불로소득자와 땀흘리는 자의 간격이 더 커진 사회가 되었습니다. 4계절을 항시 쉬지않고 야간까지 돌리는 공장의 기계에서 쏟아지는 공산품과, 한해 가을에 한번 수확하는 농작물과는 애초에 경쟁이 되지않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이 주고 받는다는 몇억의 돈들도, 저 거친 할아버지의 정직한 손에는 쥐어볼 일이 없겠지요. 농지를 도시로 개발한다고 토지보상이라도 수십억씩 받은 농부들도 간혹 있다고 하지만, 돈놀이 할줄 모르는 농부에게 너무 큰 돈은 결국 ‘독약’의 다른이름입니다. 결국 그 돈은 악마처럼 온 친척과 가정을 풍비박산내고 오히려 불화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오늘 할아버지께서는 천진난만하게 푸른 하늘의 저 조각구름처럼 해맑게 웃으시네요. “난 농사가 너무 재미나요! 주렁주렁 고구마도 열리고, 감자도 열리고! 아~ 재미나지! 나눠주기도 하고 얼마나 좋아! 원장님은 그 재미를 모를꺼야!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시는데, 무허가 보철업소에서 치료한, 황동처럼 빛나는 아래 앞니보철물이 모두 썩어 있습니다.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통증을 일으키지 않고 그냥 잘 쓰시다가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칩니다. 저 보철물이 아파지면, 힘들고도 큰 돈이 들어가는 치료를 해야 할 판입니다.
여든이 넘은 노인분들중에, 치매가 있으신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수년전에, 틀니를 맞추러 오신 할머니의 며느리가 입이 한발이나 나왔습니다. “원장님, 틀니 맞추러 왔어요.” 네.. “자꾸 어머님께서 치매가 있으셔서, 식당 화장실 같은 곳에서 닦는다고 꺼냈다가 그냥 두고 오신다니까요. 몇달전에도 다른치과에서 맞추셨었는데 참.. ” 또 돈을 들여 하려니 속상한 마음도 이해도 가고, 그렇다고 제가 그냥 해드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환자분 사정은 알겠는데요.. 어쩌죠.. 같이 가신분이 외식할때는 잘 챙겨주시는 수 밖에는..”
최근에 새벽에 자다가 깨다가 하면서, ‘아! 그래, 틀니에 이름이랑 전화번호랑 입천정쪽에 새겨넣어드리면 되지 않을까?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아마 제가 만들어드린다면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치매 노인분을 위한 이름과 전화번호를 새긴 틀니! 부질없는 상상 속에 다시 잠이 듭니다. 내친 김에, 길을 잃어버리실까봐 틀니 안에 요즘 유행하는 GPS마저도 넣으면 위치추적이 되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초등학생같은 상상도 해봅니다. (아.. 충전이 문제구나..@.@)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해주는 직업이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벤츠를 타고 온 환자분에게 호사스러운 임플란트로 모든 치아를 만들어 드리는 것 보다도, 이 할아버지의 경우가 더욱 보람이 있네요. 좀 죄송스럽긴 하지만, 조선의 왕도 나무를 손으로 깎아 틀니를 했을 뿐인 것에 비하면, 훨씬 풍족해진 편이지요.
할아버지의 손을 바라봅니다. 부르튼 손이 제게 말을 합니다.
“네 손 부끄러운 줄 알아라. 너는 언제 너 손으로 한 번 농사나 지어봤느냐. 너 입으로 들어갈 쌀 한톨 키워봤느냐.” 뻔뻔하게 살아온 제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요리조리 요령있게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보드라운 저의 손이 숨기지 못하고 말해줍니다.
고고한 척 하지만, 매일매일 빈 위장을 채워넣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게 우리입니다. 농사일을 하시는 이 할아버지와 같은 분이 없으시다면, 우린 퇴근 후 서럽게 허기진 배를 채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생업을 위해 상채기가 난 거친 손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이가 있다면, 아직 세상을 반만 알고 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은 가시에만 찔려도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아이같은 제 손이 부끄럽기만한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