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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아망가!]

치과에서 울고 웃다.


“아망가!”

 어디선가 본듯한 청년이 왔습니다. 챠트를 뒤적여보니, 아... 그 외국인유학생이네요. 수년전에, 한 유학생 환자에게 말했어요. 동남아에서 온 유학생중에 치과치료로 곤란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데리고 오라고... 며칠 후, 한국말 한마디 못하고, 이제 한국에 온지 몇달 되지 않는, 여러개의 치아가 상해있는 몇명의 청년이 소개되어 왔습니다. 눈빛도 낯설고, 차림새도 낯선 청년들. “쿤”과 그의 동료들이었지요.


 "앞으로 모든 치료가 끝나면, 양치 열심히 하세요!" 

소개 해 준 청년에게 통역을 시킵니다.  


 이 친구들은 영어도 안되니, 진료실에서는 그냥 손짓 발짓으로 다음에 와라, 아프냐, 이제 괜찮냐.. 정도만 의사소통을 했습니다. 복잡한 치료보다도 설명이 더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이래저래 수차례 치과에 다니며 모든 치료를 완료했습니다. 그들이 진료비는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런데, 그 "쿤"이 오늘 온 겁니다. “원장님, 안녕하세요? 이가 아파서 왔어요. 그때는 말도 못했는데 이제는 인사도 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고향 부모님이 집을 담보잡혀서, 입학금만 대출로 내주시고 한국에 왔습니다. 제가 스스로 벌어야 했죠. 저는 한국에 아무 연고가 없어서 서울에서 고향친구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몰라서, 막노동 일을 일주일간 하고도 사장님이 도망가서 돈을 못 받았어요. 저랑 제 친구 둘다 못받았죠. 그런 일이 여러번 있었어요. 제 친구들도 한국에서 그런 경험들과 소문들이 있구요. 그래서 여기 한국이 참 나쁜 곳이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억울하고, 속이 터져서 경찰에 신고하려는데, 한국말을 모르니 결국 신고도 못했답니다.. ” 이야기 하는 도중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눈도 촉촉하게 붉어집니다. 스물이 조금 넘은 나이의 "쿤"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괜히 이야기를 꺼냈나 싶습니다. 아마도 그의 가슴속에서 지금까지 수년간 한국에서 한 고생이 울컥 올라오는가 봅니다. 어디서 이 친구가 한국말로, 한국에서의 설움을 이야기 해봤을까요. 지금 알바를 하면 시급 3800원을 받는다네요. 물론 한국말을 못하니, 인력의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도 한국사람만 못하겠죠. 그래서 쿤은 서울에 이삿짐센터에서 알바를 방학이면 한다네요. 일당 10만원이라니, 학비와 생활비 벌이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말이 안통하는 답답함, 그만큼의 땀이 몸에서 흘러나와야 하루치 일당을 받을 터입니다. 운좋게, 도망치지 않는 사장을 만나는 행운도 필요하겠지요.


“아망가!”


 한국말로는 “아~ 하세요” 정도가 되는 쿤 나라의 말입니다. 오늘도 치아가 반은 썩어서 왔습니다. 좀 진작오지.. 살리기만 어렵게되었네.. 저는 혼잣말을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저도 그의 몇일치 일당에 해당하는 치료비를 내라고 선뜻 말할 수가 없으니 이번에도 그냥 치료를 해주어야겠지요. 한국에서도 어려운 청년이 많은데, 왜 이사람이냐고 한다면,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해줄수는 없는데.. '하는 생각도 들고, '다행히 환자분이 많지 않은 시간에 와서 지금 얼른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사이에, 요령 좋은 쿤이 이렇게 말하네요. “그래도 원장님이 이렇게 치료해주시니, 그동안 나쁜 한국 사람들에게 당한 서러움이 사라지고, 역시 여기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너무 감사했는데 한국말을 못해서 인사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방학때도 오려고 했는데 서울에 이삿짐 아르바이트를 가서 못왔어요. 죄송합니다. 이는 살리면 좋은데..”


 한국말이 청산유수같이 되는 쿤. 그의 말이 늘어난 만큼이나 시간이 많이 지났네요. 젊은 청년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그리고 아주 옛날에, 우리의 할아버지세대에는, 외국에서 이렇게 고생하시고, 또 대접 못받았던 외국으로 나간 한국인 근로자 분들도 많았던 걸 생각하면서 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쿤! 사실 내가 그 때 치료해주면서 너무 답답했어요. 정말 한국말 한마디도 못했잖아요. 아프냐, 언제 올거냐.. 괜찮냐.. 이런 말도 못했으니.. 어쨌든 열심히 양치하세요.”


 특별히 계획된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처음 만난 보험이 없는 유학생 환자가, 간단한 치료비가 없어서 이를 뽑아달라는 이야기를 하길래, 그건 내 양심상 할 수 없으니 그냥 내가 치료를 해주마. 하고 이야기하면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옆의 치아들도 여러개 썩어있고, 또 그러다보니 그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생각에서 몇 명을 더 치료했을 뿐입니다. 이야기하다가, 한국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는 말에, 제 기분도 좋아지는 것을 보니, 저도 한국사람이 맞는가 봅니다. 이런 저런 시끄러운 일들이 나라안에서 많지만, 저는 한국을 사랑하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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