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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동리凍梨]

치과에서 울고 웃다.

'凍梨' 동리. 얼어붙은 배의 껍질. 그것과 검버섯이 핀 얼굴 모습이 유사하다하여, 나이 90의 노인을 다르게 부르는 말입니다.

 “내 나이가.. 이제 좀 있으면 아흔이야. 구십. 천식, 혈압, 당뇨에 참 약도 많이 먹지. 먹다보면 한웅큼이야. 배가 부를 정도라니까. 내가 산 속 내 집에서 여기 치과까지 나오는데 너무 힘들어. 교통편도 나쁘고. 뭐라구? 나? 나 혼자살아. 자식들은 다 큰 도시로 나가고.. 난, 혼자서 산 속에 살거든.. 평생을 난 거기 살아서 내 집이 좋아. 내가 사는 곳에서는 사람 얼굴 구경하기도 힘들어.. 어쩌다 한번 도시로, 시내로 이렇게 나와야 사람얼굴을 볼까.. 하지만, 이제 힘이 없어서 농사도 못지어.. 그냥 사는거야.. 한 이년이나 더 살랑가... 뭐 어찌 살겠지.”


 혈색이 좋지 않으신 할아버지께서 치과에 오셨습니다. "틀니 좀 만들어 보려구.." 입 안에 어중간하게 몇개 남은 흔들리는 치아는 오히려 틀니를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을 걸리게 합니다. 할아버지의 순백의 백발, 단정한 옷 매무새가 좋지않은 혈색을 더욱 도드라지게 합니다.


 “원장님 여기봐,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여기! 이제 흔들리지 않는 치아는, 위에 하나, 아래 하나, 이렇게 마주치는 두개 뿐이야. 이걸 갈아내거나 깎으면 안된다구. 이게 있어서 그나마 계란이나 두부라도 먹는거야. 그 두가지 말고는 못 먹은지 오래야. 그래도 마지막으로 틀니를 좀 위 아래로 해볼까 해서 그러는 거라구. 원장님도 여기 나름의 치료 원칙이 있겠지만, 이제 얼마 살지도 못할 나인데, 그저 한 일, 이년만 쓰도록 그런 원칙 다 무시하고 빨리 대충 좀 만들어줘.”


할아버지, 원칙대로 단계를 밟으려면 지금 상태에서는 10번은 나오셔야 제대로 치료가 되거든요. 빨리 만들어 드리고는 싶지만 도리가 없어요.. 대충 만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불편해지실텐데..


 “아니 나올 수가 없다구. 어제는 산 속에서 혼자 집에서 자는데, 배에서 쥐가 나더라구. 아파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 여기 나오려면 버스를 타야하는데, 버스를 타면 아무리 어린 학생도 이젠 자리도 안 비켜줘. 한시간 가까이 서서 버스를 타고 오려면.. 아이구 나는 세 번 이상은 못나와. 원장님은 배에서 쥐가 난다는 고통을 모르니까 이런 말을 하는거야.. ”


 그럼 할아버지, 좀 가까운 치과로 가세요. 거주하시는 곳에서.. 그럼 좀 편하실거에요. 알아봐 드릴까요?


“아니 내가 사는 곳은 어차피 산 속이라서, 차타고 나오는 건, 걸리는 시간은 여기나 어디나 다 엇 비슷해.. 그냥 대충 만들어줘..”


한두푼 하지도 않는 틀니를 대충 만들어드린다는게 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하면 더 오래 쓸 수 있는 틀니를 만들까만 연구하는 저로서는, 이렇게 1-2년만 쓰게 해달라는 말은 참으로 생소한 일입니다. 일단 흔들려서 너무 아프시다는 치아만 오늘 빼시구요... 할아버지,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고 나오세요.

다른분들의 “원장님, 이거 치료하면 얼마나 쓸 수 있습니까? 평생 쓸 수 있나요? 임플란트는? 영구적인 건가요?” 하는 이런 질문만 평생 받은 저로서는 이제 돌아가실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아서, 설렁설렁 대충 만들어달라는 할아버지의 요구는 참으로 서글픈 이야깁니다.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난 다 끝난 인생이니까.. 그냥 대충 해줘.'

 성하게 남아있는 것은 위에하나, 아래하나, 두개의 치아입니다. 병원에 나올 기력도 없으시다니,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이란 죽기 전날까지도 먹어야 사는 존재이니, 치료받지 못할 상황에서 치아가 전부 다 없어진다는 것은 가혹한 일입니다. 물론 예전에 아이들이 없을 때는, 진료를 마치고 제 차로 모셔드렸던 할머니 환자분도 있었습니다만, 이제 아이들이 생기니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남자인 할아버지가 혼자 남아 인생을 사는 삶이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기에는 이제 기력이 없으십니다. 남자의 근육과 남성성이란, 더 이상 미덕이 아닌, 걸림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느 노년의 할머니들처럼 친구도 금방 사귀고, 식사도 잘 챙겨드시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고독고. 무위고. 챙겨 줄 이 하나 없는 상황에서의 오래 사는 장수란 참 또하나의 형벌이 아닌가 싶습니다.


 옛말에, 장수하여 오래 살 되, 자식이 불행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 고통이요, 장수하여 오래살되, 몸에 고통스런 병이 끊이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불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시대에 태어나셔서, 부엌일도, 청소도 잘 모르고 생활하시다가 덜컥 배우자를 여의고,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혼자 기력없는 삶을 이어가시며 생활하기에는,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성품이 반듯하신 할아버지의 남아있는 날들에 고통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주섬주섬 챠트를 뒤져보니 핸드폰도 없으십니다.  이제 앞으로는 산 속에서 치과로 택시왕래를 하시면 그 교통비는 제가 드리겠다고 말씀드리려고 전화를 드렸는데, 받지도 않으시네요. 집전화에, 귀도 어두우신가 봅니다. 오늘 이를 뽑으셨는데 혹시 탈이 나셨는지 염려도 됩니다.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님들은 모두 자식 자랑을 하십니다. 자식에게 부담주기 싫으시다고 애를 쓰십니다. 자식이 해준다고, 자기 사는 곳에 와서 틀니를 하라고 했다고 말했지만, 내가 안간거다. 지금도 오라고 난리다... 할아버지 그럼 아드님 계신 곳, 따님 계신 곳에 기거하시면서 가까운 곳에서 진료받으시는게 편하실거에요...


 늙어서 혼자 산다는 것. 낮에도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것. 저희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혼자 남으신 아버지는 항상 “관우야 일찍 퇴근하여 오거라. 심심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재미없었던 이야기를 한없이 둘이서 나누었지만, 이제는 너무나 그리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역시 구십을 바라보는 저의 이모부님도 만나뵈면, “친구? 친구 다 먼저 가고 이제 없어.. 몸이 좋지 않아서 누구 만나러 나갈 기운도 없어.. 요즘 유일한 낙은 소설을 혼자서 읽는거야. 레미제라블,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 파우스트.. 난 그 안에 인생이 있다고 생각해. 관우 너도 곱씹어 보면서 그런 책들을 읽어보길 권한다. 나는..”


 '凍梨' 동리. 얼어붙은 배의 껍질. 그것과 검버섯이 핀 얼굴 모습이 유사하다하여, 나이 90의 노인을 다르게 부르는 말입니다.


 가을, 겨울을 지난 배의 껍질. 인생의 가을, 겨울을 지나고 계신 할아버지. 이름이라도 생기있게 붙여줄 것이지, '동리'라는 참으로 야박한 명칭으로 나이 90을 칭하고들 있네요.


 우리 인류의 가장 오랜 테마는 ‘사랑’입니다. 노래도, 소설도, 영화도, 미술도.. 부유해보이는 그 누군가도, 결국 사람에게 다치고, 사람에게 치유받으면서 사는 것이 삶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몇 번을 전화를 넣어보니 할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십니다. 원장실이 떠나가라 귀가 잘 안들리는 할아버지를 향해 "택시비 제가 드릴테니, 이제 택시로 오고 가시라구요!" 라고 호기롭게 외칩니다. "그냥 원장님 저는 버스타고 갈랍니다. 마음만으로도 고맙습니다.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저도 할아버지에게 없어진 치아만 채워드릴 것이 아니라, 헛헛한 마음도 달래줄 수 있는 치료자가 되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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