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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 May 10. 2018

[함께 살아간다는 것.]

치과에서 울고 웃다.

“마.. 내 마누라꺼 먼저 해 주이소.”

어딘지 발음이 좋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니 치아가 한개도 없으시네요.


“아이고.. 이 양반아.. 아니, 이 바깥양반꺼 먼저 해 주이소. 당신 우 아래 틀니하고 나서 내꺼까지 다 하려면 형편이.. 그건 무리라예.”  


할아버지. 틀니는 어디있으세요?


“마.. 안 맞아서 집에 두고 왔슴미다. 원장님.”


“원장님예. 우리 바깥양반 꺼 먼저 해 주이소. 내는 아픈거 우선 신경만 죽여주시라예.”


......

 
 할머니는 수년 전 무허가시술보철을 하고, 그 치아들이 여러개 탈이 나서 다 뽑아야 할 지경입니다.무허가시술소에서 치료받은 분들은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재치료 비용이 드니 결국 후회 하시게 됩니다 . 하지만 치과병원의 문턱은 높고, 지갑은 얇아서 그냥 무허가로 가셨다고 하십니다. 딱한 사정이지만, 보이지도 않는 남의 입 속의 사건을 누가 알아줄리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치아가 모두 없으셔서 입에 주름이 조금 더 늘었습니다. 치아가 입술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지 못하니 입술 가까운 주변 근육이 오그라들어서 얼굴의 주름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런 경우는 주름치마처럼 주름진 입술을 들어올리며 받쳐줄 틀니를, 조금은 두툼하게 만들어드려야 입술의 주름도 좀 줄어들고, 팽팽해져서 얼굴도 좀 젊어보이시게 됩니다. 성형아닌 성형이 되는거죠.


 “딸이랑 아들놈이랑 상의하고 다시 오겄소. 원장님. 내 혼자 이 결정을 할 수가 없고마. 고마 미안함미더.”

 이 말을 듣는 동시에, 부모님 봉양하느라 장가가기를 포기한 친한 동생들이 머리에 스쳐갑니다. 행님. 부모님 보일러도 새로 해 드리고, 가까운 여행도 보내드리고, 병원비 내드리고 하려니 장가 갈 경제적 여유가 없네예. 내만 바라보고 사신 부모님을 지가 우짤 수 있겠심미꺼..


 보통 이런 경우에는 가족 회의가 열립니다. 우리 아버지 어쩌죠?하며 자제분들이 찾아오십니다. 대한민국의 자제분들은 다들 효자이시죠. 두 분의 틀니 비용만도 큰 부담일텐데, 요즘 유행하는 최신식 임플란트를 하면 얼마나 들까요? 하는 문의를 빼놓지 않습니다. 사실, 틀니 만으로도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씹히지 않는 틀니라 할지라도, 사용하지 않는 틀니라고 할지라도 주머니에 넣고 다녔죠. 한때는 틀니가 부의 상징인 적도 있었으니까요.


 저의 부모님도 두 분 모두 생존하셨을 당시, 여러가지 이유에서 임플란트를 하지 못하고 틀니로 잘 지내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누가 공짜로 해줄테니 무엇을 할 테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임플란트가 좋지요. 하지만, 틀니도 자식으로서 죄책감을 가질 정도의 나쁜 몹쓸 물건은 아니라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다소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런대로, 잘 쓰고 계십니다. 전신질환이 심하신 분들은 충분히 경제적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플란트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간암 말기일때, 커다란 병원에서 저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좋은 수입된 신약이 있습니다. 매달, 한 달에 천만원정도 치료비를 내신다면, 어머니가 쾌유될 확률이 높습니다. 투약 기간은 얼마나 될런지 모릅니다만..” 저희 가족은 가족회의를 열었습니다. 그 때 가졌던 마음의 무거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종종 저의 형님과 명절이면 그 이야기를 나누니까요. (그 약은 비용 문제로 결국 포기하였습니다.)


 주름진 얼굴과 노화의 과정이, 현대에서는 뒤처짐과 가난의 상징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저 할아버지의 주름이 참 존경스럽고 아름답습니다. 농사를 지으시고, 성실히 인생을 사신 흔적이라고 보입니다. 샌님같은 펜대만 잡은 저의 손이 때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아내와 아름답게 늙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자주 나눕니다. 매스컴은 노화방지 테크닉을 하나의 종교처럼 만들어가고,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가만히 자연에 순응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의 셀프카메라 기능은 사람들을 화장품과 성형수술에 더 많은 돈을 들이게 만들고, SNS의 사진들 역시 우리를 소비의 함정으로 밀어넣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부실한 치아로 서로가 씹을 수 있는 찬거리는 무엇일까 고민하며 시장을 보고, 사랑을 나누며 사시는 노년 부부의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년전에는 전혀 다른 상황의, 어느 마음이 무거운 할머니께서 오셨습니다. 가정불화로 남편과 다툼이 잦으신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우선 틀니를 해달라. 남편이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남편이 죽은 뒤, 재산을 내가 상속받아 임플란트를 꼭 하고야 말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의 사실여부를 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을 먹느냐 보다, 누구와 먹느냐가 더 중요한 삶이 아닐까
 
오래 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삶이 아닐까

 눈이 노안으로 흐려지는 것 보다,
 마음의 눈이 흐려지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하지 않을까

 늙지 않는 것 보다, 마음 속에 무엇을 품고 사느냐가 더 중요한 삶이 아닐까 생각합 니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서, 한가지 원망스러운 것은, 할아버지처럼 농사를 지으시고 체력을 소모하시는 분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잘 씹어먹기 위한 치아인데, 신은 그것을 이렇게 약한 자에게서 빨리 빼앗아가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봄에 새싹이 돋습니다.


새싹이 돋듯, 치아도 어르신 입 속에서 새로 돋아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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