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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도연 Apr 09. 2024

참 정치적인 김미영 팀장(1)


오늘, 김미영 팀장은 출근 전 헬스장을 찾았습니다.

어제와 그제는 제조업 사 공장장님과 거래처 사장님,  박 부장과 김 이사와 정 전무와 술 약속이 있었습니다.


테라 500ml에 230kcal,  참이슬 1병에 404kcal. 각각을 말아 맥주잔(300ml)에 담으면   한 잔에  무려 250kcal. 대충만 세어도 10잔을 넘게 말아 마셨는데, 10잔이라 쳐도 술만으로 이천오백 칼로리입니다.


여기에 방어, 광어, 우럭 등 익히지 않은 생선은 단백질이니 칼로리로 치지 않는다 쳐요. 그래도 자꾸자꾸 입으로 들어가던 고소단짠 콘치즈, 바삭바삭 새우튀김, 짭조름 두부조림을 합하면 얼마나 될지. 계산 포기합니다.

김미영 팀장은 그래서 헬스장을 왔습니.

팀원들이 바디프로필을 찍는다며 닭가슴살만 먹고 점심 운동을 하길래 자극받아 두 달 전에 회원권을 끊어놓은 곳입니다. 한 세 번 왔네요. 처음 온 것처럼 낯설고 어색합니다. 하지만 이걸 이겨내고 해야 한다는 걸 김미영 팀장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환영받는 여성이란
남성들처럼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주는 대로 잘 받아먹으면서도
남성들처럼 단추가 터질 것처럼 배가 나오거나 술 냄새가 나서는 안 되는 존재여야 합니다.

특히나 팀장급 여성은 가끔 하이힐에 엉덩이와 허리가 쫙 붙는 슬림핏 정장을 입어야 할 순간들이 오기 때문에 방심하다가는 그 비싼 정장 한 벌을 또 사야 하니까요. 




그래서 김미영 팀장은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집에서 나와
 헬스장을 들러 땀을 흘려 냄새를 빼고 지방을 태울 계획인 것입니다.



김미영 팀장의 가방은 오늘 두 개입니다.


평소에 피부처럼 걸치고 다니는 핸드백을 제외하고 러닝 머신을 뛸 때 신을 운동화와 샤워 후 쓸 화장품 파우치를 든 가방을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김미영 팀장은 화장을 잘하지 않는 여자입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김미영 팀장은 꾸안꾸(꾸몄지만 안 꾸민 듯한 꾸밈) 화장을 합니다.

화장을 격하게 하는 여자는 무서워하고

화장을 안하는 여자는 무시하는 것이 사회입니다.


김미영 팀장 가방에는 로션, 수분크림, 모공 커버 프라이머, 파운데이션, 파우더, 컨실러,  눈썹 칼과 아이라이너, 컬러립밤까지 담았습니다. 샤워도 해야 하기 때문에 바디샤워, 페이스 클렌저, 샤워 타월, 샴푸, 린스, 컨디셔너도 챙겼습니다.

운동은 했지만 운동한 티를 내지 않고

평소와 똑같은 모습으로 출근하려는 김미영 팀장의 노력입니다.



러닝 머신에 올라가 열심히 뛰기 시작하는 김미영 팀장.

하지만 올라간 지 5분도 안 돼 전화벨이 울립니다.

정범석 전무입니다.
설마 싶어 시계를 확인합니다. 아침 7시 30분입니다.
상사의 전화를 받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김미영 팀장은 군말 않고 폰을 들며 러닝머신을 멈추고 맙니다.

음악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급히 달려가 전화를 받는 김미영 팀장.

“어, 김 팀장. 내가 어제 말한 거 그거 오늘 오전까지 줄 수 있나.”

어제 말한 거? 술자리 중에 말한 거? 적어도 밤 11시는 넘겼을 시간에 말한 거?
그걸 지금 아침 7시에 찾고 있습니다. 정범석  놈이 말이죠.


김미영 팀장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지만 대답합니다.

“예, 전무님. 작성해 보고 드리겠습니다.”

김미영 팀장은 러닝머신이 아니라 샤워장으로 향합니다.
목표한 10킬로 걷기는 포기합니다. 샤워하면서 내용을 구성하고 회사로 출근해 앉자마자 보고서를 작성해도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정범석 전무는 무슨 생각으로 늦은 밤 자정이 다 된 시간에 던진 지시를 다음 날 아침에 전화해서 오전까지 보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건지 김미영 팀장은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합니다. 상사는 늘 불가능을 지시하고 상식을 넘어서니까요.

계급이 깡패인 것이 조직의 논리입니다.

그렇게 아니꼬우면 너도 상사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김미영 팀장은 군말 않고 책상에 앉습니다.


저 멀리 정 전무가 출근하고 있습니다.

김미영 팀장은 자리에 일어나 꾸벅 인사합니다.

정 전무는 역시 잘하고 있군 보고서 기다리고 있어 하는 눈으로 자기 방에 들어갑니다.

김미영 팀장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합니다.

참 정치적인 김미영 팀장입니다.


  




정치적인 사람이 되는 법 (1)



상사가 지시할 경우 머릿속에서 안될 것 같다 불가능할 거 같다 저 인간이 제정신인가 싶어도 무조건! 우선은! 네 하고 봅니다.


네, 준비해 보겠습니다.

네, 살펴보겠습니다.

네, 알아보겠습니다. 


아쉬운 소리는 나중에 합니다.


찾아보니 이런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해보니 정도로 간략히 정리되었습니다.(간략한 개요 정도 들이밀며)


상사가 지시를 했는데 면전에 대고


아, 곤란합니다.

아, 안될 거 같습니다

아, 지금이 몇 시죠?


이런 건 안됩니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말이 안되는 거 같아도

한 발 물러서는 게 아랫 사람의 미덕입니다.

(꼬우면 네가 일찍 입사하던가?!)


던지는 게 쓰레기라도 우선 받아놓으세요.

나중에 태워버리더라도 말이죠.

 


직장에서 정치적인 것은

나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현명한 것입니다.

이기는 길입니다.

사내 정치는

남에게 하는 아부가 아니라

나를 위한 양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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