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올레타>는 사진을 찍는 예술가 어머니 ‘한나’, 그리고 그녀의 모델이자 딸 ‘비올레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제는, 모델이 되는 딸 비올레타는 미성년자란 점, 그리고 한나가 찍는 사진은 여성의 누드 사진이란 점이다. 예술을 향한 한나의 비뚤어진 집착과 뒤틀린 모성, 혼란을 겪는 비올레타의 미성숙한 면모가 뒤엉키면서 어긋난 모녀 사이는 점점 파국을 향해 간다.
영화의 시놉시스를 처음 읽고는 당황스러웠다. “이런 이야기를 현대에 꺼내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궁금해졌고, <비올레타>의 감독 ‘에바 이오네스코’에 관해 알아봤다. 이내 영화보다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이 영화의 줄거리가 다름 아닌 감독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 <비올레타> 스틸컷 ⓒ알토미디어
에바 이오네스코의 어머니 이리나 이오네스코는, 딸 에바를 4살 때부터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이오네스코 감독은 촬영이란 어머니의 폭력을 어린 나이에 오롯이 감당했고, 이는 고스란히 트라우마가 됐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내가 살아오며 겪었던 것을 그대로 재현할 생각은 없으며, 영화 속 ‘나’가 내가 겪었던 몇몇 상황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즉, 감독에게 <비올레타>는 자전적 트라우마의 단순 파격적 재현이 아니라, 자아 일부를 분리하여 상황을 재정립하는 정교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감독은 주인공 ‘비올레타’ 역의 특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캐릭터보다 실제 나이가 많은 아역 배우 ‘아나마리아 바토로메이’를 캐스팅했다. 해당 선택이 훌륭한 이유는, 영화 내 모녀의 악연이 감독-주연 관계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한나는 비올레타에게 “너와 삶을 공유하지 말았어야 했어”라고 말한다. 사실 영화는 한나 또한 과거에 폭력을 겪었음을 시사한다. 폭력은 대물림된다. 이오네스코 감독과 바토모메이 배우의 관계는 이와 다르다. 감독은 자신이 겪은 고통을 반추하지만 주연 배우에 그 폭력을 고스란히 반영하지 않으며, 실제 사건과 거리를 유지하려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 <비올레타> 스틸컷 ⓒ알토미디어
<비올레타>에서 폭력은 관계로 이어진 가운데에 나타난다. 그만큼 영화는 인물과 인물, 쇼트와 쇼트, 시공간과 시공간 사이의 이어짐과 단절을 오가며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는 실외에 있던 비올레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 흥미로운 점은 영화는 문 여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으며, 암전된 상태로 영화의 제목을 보여준다. 그다음 카메라는 실내에서 문을 비추며, 이때 문을 여는 사람은 비올레타가 아닌 한나다.
영화엔 이처럼 단절된 시공을 편집으로 잇는 순간이 또 등장한다. 친구 아폴린의 집에서 아주머니에게 희롱을 당한 비올레타가 문을 열고 뛰쳐나가는 쇼트 다음에, 곧바로 본인 집에 돌아오며 문을 여는 비올레타의 쇼트가 이어지는 식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시공간적으로 단절된 두 컷 사이를 비올레타와 문을 통해 연결한다. 이를 통해 <비올레타>는 절대적인 서순보다 주인공 비올레타의 심리적-인지적 시공간에 집중하며 관객이 영화에 한층 몰입하게 한다.
▲ <비올레타> 스틸컷 ⓒ알토미디어
<비올레타>는 서로 떨어진 시공간을 연결하기도 하지만, 물리적으로 가까운 두 공간(혹은 시간)을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공간적 단절이 특히 두드러지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나의 촬영 작업실이다. 한나의 작업실과 비올레타의 거주 공간은 서로 다른 층에 있지만 분명 같은 집 내에 위치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공간이 같은 집 내에 있다는 감각은 전혀 없으며, 한나의 작업실로 비올레타가 진입하는 장면은 이세계로 진입하듯 묘사된다. 이는 공간 사이의 거리감을 한층 키운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의 또한 단절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두 시퀀스 간 대비를 부각한다. 앞서 말했듯 영화의 오프닝에서 카메라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비올레타를 따라다니며, 비올레타가 실내로 들어서는 오프닝 쇼트 다음에는 곧장 한나가 실내로 들어서는 쇼트가 붙는다. 엔딩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한나는 결국 양육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비올레타는 보호 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엔딩 시퀀스는 한나가 보호시설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 <비올레타> 스틸컷 ⓒ알토미디어
실내에서 놀던 비올레타는, 한나가 자신을 보러 왔음을 알고 밖으로 도망간다. 영화는 비올레타가 뛰쳐나가는 쇼트를, 그다음 비올레타가 한참 멀어지는 쇼트를 보여준 다음에야 밖으로 따라나온 한나의 쇼트를 보여준다. 영화는 도망가는 비올레타의 모습에 연속된 쇼트 두 개를 할애하면서, 비올레타와 한나 사이의 거리감, 단절을 강조한다. 비올레타는 계속 달리고, 카메라가 약간 뒤에서 비올레타를 따라가며 뒷모습을 계속 보여준다. 그다음 화면이 암전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비올레타가 이야기의 시작에서 들어서던 집, 안정된 공간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이야기의 끝에서 비올레타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르는 길 위를 달리며, 불안과 가능성으로 가득한 바깥을 향해 뛴다. 그리고 영화는 이 순간 비올레타의 얼굴을 비추지 않으며, 관객은 비올레타의 감정을 볼 수 없게 된다. 이때 필자는 영화가 영화 밖 현실로 이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쩌면 영화의 결말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있지만 새로운 길을 향해 내딛는 감독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여전히 엄마로부터 도망치며 두려운 마음으로 뛰쳐나가지만, 어쩌면 그 얼굴에는 희망이 담겨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