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폴라니, 거대한 전환
폴 칼라니라는 학자를 처음 접하게 된건 교수님 연구실이었다.
아니 그냥 책이 꽂혀있었는데 뭔가 궁금해서 펼처봤다가 아, 이 책은 한번 봐야겠구나 직감한 책이다.
왜냐하면 처음 책을 펼치자마자 나오는게 바로 “시장경제는 도달할 수 없는 유토피아”라는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정도 빨간 맛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내용을 버거워하는 분이 있다면 사실 이 책을 읽기에는 많이 힘들 수 있다.
뭐 내가 생각하기에도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이제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고 기본 토대가 되는 사상이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는 것 자체는 이미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책 자체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국제 시스템, 2부는 시장경제의 흥망, 3부는 진행 중인 전환으로 이루어져있다.
1부는 생각보다 많이 짧은데 아무래도 기초적인 배경을 설명하는 것에 그쳐서 그럴지 모르겠다.
2부에서 크게 설명하는 것은 시장경제가 떠오르는 이유와 그 한계점이다.
폴 칼라니는 분명 시장경제가 꼭 없어져야 할 것 또는 백해무익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비판은 바로 모든 것이 시장경제적인 관념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런 관념은 ‘화폐가치’로 여겨지는데 인간적인 가치와 상품가치와는 전혀 상관없는 본질들이 가치화 되어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생산이 계속 돌아가려면 노동/토지/화폐가 상품으로 변형되어야 했다.
물론 이것들은 시장에서 판매하기 위해 생산된 게 아니므로 정말로 상품으로 변형될 수는 없었다.
- 폴 칼라니, "거대한 전환" 중에서 - p.247
이렇게 화폐가치의 개념은 시장경제를 통해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과 알아서 조정이 된다는 시장조정으로부터 도출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유지될 것이라는 생각이 유토피아와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장주의의 지점에서 주로 비판하는 마르크스의 낙관론은 사실상 자본주의에도 뿌리깊에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각들이 오늘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시장경제의 공리주의적 이익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공리주의적 이익이 화폐이익과 연관이 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고 실제로 굉장히 정답이다.
우리는 일단 두 가지 견해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첫 번째, 현실에서 힘을 갖게 되는 것은 오로지 분파적 이익뿐이며 사회 전체의 전반적 이익이란 결코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와 쌍둥이처럼 불어 있는 것으로 인간 집단의 이익을 오로지 '화폐 소득'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생각이다.
- 폴 칼라니, "거대한 전환" 중에서 - p.417
자본주의적 사고는 결국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적은 효과로 많은 행복을 얻는 것과 동시에 그 행복이 ‘돈’이잖는가? 그러나 폴 칼라니의 주장에는 이러한 형태의 모습이 가치화 할 수 없는 일에도 가치를 매김으로써 오히려 비인간화에 다다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비인간화를 넘어서 인간이 아닌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안그래도 오늘날 부동산과 주식이 장난이 아닌데 딱 이 내용에 해당한다. 물론 주식은 좀 유난 떤거지만...특히나 부동산같은 경우가 가치화에 주된 예로 들고 있는 것인데 ‘노동, 토지, 화폐’ 이 세 가지가 시장 경제의 허구 상품이라 여기고 있다.
인간 행동에서 물질적 동기가 가장 강한 힘을 갖기 때문이라고 그릇되게 설명되어 온 것이다. 수요 공급 가격 체제란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인간들의 동기가 경제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그와 무관하게 항상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는 것이다.
(중략)
전 인류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은 새로운 행동 동기가 아니라 새로운 매커니즘이다.
- 폴 칼라니, "거대한 전환" 중에서 - p.537
확실히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생각들을 폴 칼라니가 잘 고찰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그런 생각의 위험성도 지적하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 한국적 상황에서 연결지점을 점검해보게 된다.
폴 칼라니의 저서를 직접 읽어보면 제일 좋지만 가장 웃긴 지점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씌여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여기서 언급하는 시장경제체제는 진짜 초기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시금 신자유주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통용될 수 있는가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나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한다.
확실히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익숙하고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니 그렇다고 폴 칼라니의 의견을 긍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공산주의를 옹호하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익숙하다는 것의 위험성과 더불어 모든 것의 가치화에 대한 경계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좀 공감을 했던게 모든 드라마다 소비되는 문화 형태마다 화폐가치로 값을 매기는 모습이 반드시 나오기 때문이다. 아, 생각해보니까 PPL을 받으니까 어쩔 수 없던거 같다.
아무튼 끝까지 읽고 마지막에 보면 역자 후기 같은게 남아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어느정도 감동이 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