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집 공사가 길어질 때

by 권미림

윗집 보수 공사가 앞으로 두 주 동안 있을 예정이라는 안내문이 1층 게시판에 붙었다. 종이에 적힌 그대로 이틀 전부터 벽을 무너뜨리는 드릴 소리로 온 집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벽도, 바닥도, 앉아 있는 식탁과 의자에도 잔 진동이 울렸고, 드릴 소리가 끝나면 곧이어 땅땅땅, 망치로 벽을 허무는 소리가 온몸을 뚫었다. 나는 깜짝깜짝 놀랬다. 창문으로는 앞 동을 치고 돌아오는 메아리가 또 다른 소음이 되어 들어오고 있었다. 두 시간, 세 시간. 이렇게 두 주를 보내야 하는 건가. 문의 사항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연락하라는 안내문을 기억하고, 1층으로 내려가 번호를 적어 올라왔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전화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다섯 시간이 지나고 오후 6시가 돼서야 동네가 잠잠해졌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었다. 내가 궁금한 건 딱 하나. 드릴 공사가 있는 날은 언제인가였다.


"저, 안녕하세요. 아랫집인데요..."


다행히 담당자는 언짢아하지도, 불편해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조금 난감하다는 말투로, "아이고, 어쩌죠. 이번 공사가 벽을 다 허무는 거라. 드릴 소리가 수요일까지는 계속 이어질 거예요."라고 했다. 어쨌든 수요일까지라는 그의 말은 나에게 희망의 메시지였다. 적어도 갑자기 놀랄 일은 없어진 거니까.


다음 날도 드릴 소리로 온 집이 울렸다. 노트북을 켜고 그 앞에 앉았지만 나는 한 글자도 쓸 수 없었다. 아, 이럴 때 에어 팟이라도 있었으면 됐을까?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벽을 깨부수는 엄청난 소리는 막지 못할 게 분명했지만, 나는 괜히 에어팟을 갖지 못한 것을 탓했다. 그렇게 터덜터덜 집을 나섰다. 긴 아파트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까지 천천히 걸었다. 활짝 열려있는 현관문들. 그 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모습은 평소랑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바깥으로 걸어 나와도 소음은 여전했다. 하지만 화단 의자에 앉아 채소를 다듬으시는 아주머니들이나 슈퍼마켓 앞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할아버지들 누구도 소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나는 머리가 울려서 괴로워 죽겠는데. 투덜투덜, 속으로 그렇게 투덜대고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참아내고 있을 뿐인데.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을 씻고 한숨 돌리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저, 윗집이에요."


문을 열어보니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아주머니 한 분 서 계셨다. 아, 내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건 걸 들으셨구나. 나는 아주머니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었다.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며, 조금만 참아 달라며 참외 한 상자를 건네주셨다. 아니에요, 저 이거 받으면 안 돼요. 참외를 거절하면서 여전히 평화로운 오후를 보내는 이웃들 얼굴을 생각했다. 제가 이해했어야 하는데요, 하면서 계단 옆 화단 의자에 앉은 아주머니들 얼굴을. 저는 이거 받을 수 없어요, 하면서 슈퍼 앞 할아버지들 얼굴을. 정말 괜찮은데요, 하면서 아무런 컴플레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던 옆집 사람들을.


그 참외는 쐐기였다.


내가 내 안에다가 스스로 박는 쐐기. 다시는 그러한 일이 없도록 다짐을 두는 일 같은 것. 여유로워져야지, 느슨해져야지, 너그러워지고 조금은 무심해져야지 하는 다짐 같은 것.


낡고 오래된 아파트, 단 두 동밖에 없는 조그만 동네에 사는 일이 이토록 많은 것을 알려주다니. 나는 요즘 새롭고 세련된 곳에서는 배울 수 없을 삶의 지혜를 얻으며 매일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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