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인] 리뷰
몸은 거인이지만 아직 마음은 한없이 나약한 소년이 있다. 소년 영재는 고통으로 물 든 인물이다. 영화<거인>은 그를 따라간다. 그의 삶, 그의 감정을 따라간다. 그의 삶은 한없이 애처롭다.
소년에게 삶은 늘 숨이 차다. 돈을 버는 대신 어떻게든 잉여인간으로 살아가려는 아버지, 자식을 내팽개치고 지방으로 가버린 어머니, 철없고 어린 동생까지. 가족이 소년에게는 오히려 짐처럼 느껴질 뿐이다. 스스로 고아가 된 소년은 갈 곳이 없다. 천주교의 후원을 받는 보호시설 ‘이삭의 집’에 머물고 있지만, 나이가 차 곧 떠나야 할 처지다. 차가운 세상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소년은 믿음도 없이 신부가 되기를 소망하고, 차갑기만 한 원장부부를 “엄마·아빠”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 하지만 소년의 내면은 황량하기만 하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시설의 구호물품을 빼돌려 팔고, 시설에 남기 위해 곤란에 처한 친구를 철저히 외면한다.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세상에 부대끼는 소년은 몸은 웃자랐지만 마음은 아직 보호가 필요한 아이일 뿐이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거인>은 10대 소년 ‘영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왕따, 자살, 폭력, 성폭력 등 10대를 다룬 기존의 영화와는 그 결을 완전히 달리한다. 주인공 영재는 사춘기의 성장통보다는 삶의 고통과 쓴맛을 먼저 배운 소년이다. 영화는 그런 영재의 모습을 통해 사회와 가족이 보듬어주지 않는 10대들의 심리를 날 것 그대로 펼쳐 보인다. 청소년기를 그룹홈에서 보냈다는 김태용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어선지 영화는 아프도록 섬세하고 날카롭다.
감옥 같은 갑갑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 위선을 통해 죄인이 되어가는 길을 선택하는 10대 소년. 온기보다 냉랭함이 지배하는 이 영화가 연민과 불편함을 더하는 이유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룹홈에서 10대를 보낸 김태용 감독의 이야기를 옮겨놓은 작품이기도 한 영화<거인>. 신체는 거인처럼 자라났으나 내면은 여전히 어린 시점에 머물러있는 자기반성의 의미를 담은 작품의 제목. 처음, 이 작품의 제목을 설정하고자 했을 땐 '눈물'이라고 하려 했다고 한다.
김태용 감독은 제목<거인>의 의미가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어야 하는 덜 익은 '영재'의 존재를 대변하는 말이라고 한다. 감독은 극 중 그룹 홈 안에서 작은 아이들 속에 홀로 우두커니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 '영재'의 모습이 거인의 모습 같다고 했다.
영화 속에는 ‘영재 부‘외에도 많은 어른들이 나온다. ‘영재 부’처럼 ‘영재’에게 악같은 존재도 나오지만 도움을 주는 존재들도 중간 중간 등장한다. 결론적으로 ‘영재’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는 없었다.
이 작품은 '차가운 현실'을 다뤄냈기에 어느 정도의 고통을 감수하고 작품감상에 임해야 한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들이 일련의 색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그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참조한 작품 또한 비슷한 맥락의 영화들이다. 다르덴 형제의 <자전거 탄 소년>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가 그의 작품에 영감을 줬다고 한다.
고통으로 뒤덮인 한 소년의 성장통을 담아낸 <거인>. 이 소년의 위선에 과연 당당히 돌을 던질 수 있는 자는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