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 리뷰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르헨티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영어 제목으로는 'A Boyfriend for My Wife'라고. 아내와 이혼하고 싶은 남자가 아내에게 다른 남자를 붙여준다는 서구론적인 담론이 민규동 감독을 처음부터 사로잡은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야기를 한국적으로 끌어낼 수 있던 접점은 여자의 외로움, 불안, 피곤함이었다고 감독은 말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불안과 외로움을 공유할 친구가 필요해서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결국 그 안에도 구원이 있는 것 같지는 않더라. 더이상 잘될거다. 잘할 수 있다는 최면으로 버티기에는 한계가 온 것 같다. 이제 새로운 마약이 필요하다."
그렇다. 민규동 감독의 말 처럼 요즘을 사는 우리들은 SNS의 일정부분, 그 이상을 기대며 살아간다.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 여자 연정인은 어찌보면 시시각각 새로운 자기 이야기, 내 생각들로 가득 찬 당신의 페이스북과 닮아있다.
아침에 볼일을 보는 남편에게 생과일 주스를 각기 다른 종류로 두 잔이나 건네며 "싸면서 시집 읽는 것 보다 마시는 게 덜 이상해"라고 하지를 않나, 자신을 아줌마라 부르는 신문 배달원에게는 "신문 보면 사모님이고 안보면 아줌마에요? 그렇게 막말하고 싶을 때 아줌마 호칭 붙이니까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아줌마면서 아줌마 소리에 치를 떠는 거에요" 라고 하기도 하고, 남편 회사 모임에 나가 사모님들의 틈 바구니에서는 "눈치를 안 보고 살아서 그래요, 예의만 지키면 눈치는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니까" 라며 쓴 소리를 한다. 세상을 등지려는 카사노바 장성기에게는 "자살도 살인입니다. 콩밥 먹어야 돼요. 아저씨가 뛰어내리면 그건 누가 치워요?" 라며 괴롭게하고, "아저씨, 동정의 대상이 되는 거 절대 싫죠? 그니까 저 동정하기 싫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 꼭 100원 받아야겠어요" 라며 100원 더 받으려는 택시 아저씨에게 일침을 놓기도 한다. 가끔은 진상녀, 때때로 정의의 수호자 같은 이 여자는 시끄럽다고 느껴지기도 하는 반면, 꽉 막힌 속을 뻥 뚫어 시원하게도 한다.
남편 두현을 보면서 든 생각은 '차라리 싸우는 게 낫겠다'였다.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이야기를 차분하게 하려는 모습은 없다. 단지 싸우기 싫으니까 이혼하고 싶고, 이혼하고 싶은데 나쁜 사람은 되기 싫으니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상황을 유도하기로 한다. 그래서 전설의 카사노바라는 장성기에게 부탁을 하게되는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모자라 보이기도 한 그런 남자다.
부탁을 받아들인 장성기도 평이한 인물은 아니다. 느끼한 말투와 오글거리는 대사에 오버액션으로 여기저기서 큰 소리를 빵빵 터뜨려 주더니,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판타지적 인물로 자리매김 해간다.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프리카어 등의 몇 개 국어는 기본이고 핑거 발레에 심지어 젖소의 젖을 짜는 기술, 요리, 샌드아트는 말 할 것도 없다. 더더욱이 중요한 사실, 돈이 많다.
두현과 정인이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므로 대화를 하게 한 매개체 같은 존재가 성기이다. 영화는 인물들을 극단적으로 그려놓았지만, 그 내용은 현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오래 만난 커플, 결혼이라는 현실에 지친 부부들에게 추천되고 있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형의 유통기한이 있기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화르륵 타오르던 감정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삭아진다. <연애의 온도>가 이별을 반복하는 미혼의 커플에 대한 이야기라면 <내 아내의 모든 것>은 기혼 커플의 이야기이자 보다 진한 어른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때의 감정이 얼마동안 이어지고 있는 걸까.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 많은 생각을 하는 즈음이라면 이 영화를 보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