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유난히 크게 걸린 밤이면 도시는 잠깐 멈춘 것처럼 보인다. 불이 켜진 창문들은 각자의 사정을 품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나의 표면처럼 평평하다. 그 위로 고래 한 마리가 지나간다고 상상해본다. 바다도 없이 헤엄치는 고래. 물결 대신 공기를 가르며 천천히 몸을 옮기는 존재.
이상한 일은 그런 장면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데 있다. 우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 것들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하루의 무게를 등에 얹고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책임과 기대와 체념 같은 것들을 물속 호흡처럼 익숙하게 들이마신다. 그러니 하늘을 헤엄치는 고래 한 마리쯤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도시의 건물들은 곧게 서 있지만 그 속 사람들의 마음은 늘 수면 아래에 잠겨 있다. 말하지 못한 생각이 가라앉고 미뤄둔 감정이 퇴적층처럼 쌓인다. 겉은 단단해 보여도 속은 유영 중이다. 누구도 타인의 심해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각자의 물살을 버틴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이 사실은 얕은 수면이고 조금만 고개를 들면 다른 차원의 바다가 펼쳐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그곳에서는 체면도 속도도 의미를 잃고 오직 숨을 고르는 일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고래는 아무 말 없이 도시를 건넌다. 그 거대한 몸짓은 위협이 아니라 통과에 가깝다. 지나가는 것들은 대부분 소란을 남기지 않는다. 다만 잠깐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그림자 속에서 비로소 자기 크기를 가늠한다.
어쩌면 삶은 이런 밤의 장면과 닮아 있다.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움직이는 것들. 나는 오늘도 그 위를 걸어가면서 물이 없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믿고 싶은 것은 언제나 현실보다 조금 더 깊은 곳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