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시선

또 밤이야.

by 권씀

잠이 몹시 쏟아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좀처럼 눈을 붙이지 못해 하얗게 지새운 밤이 있지. 오늘 너의 하루는 어땠을까. 채웠는지 비웠는지의 여부보다 별일은 없었을까 생각이 들어. 우두커니 혼자 있다 보면 말이야. 잘 될 거란 믿음보단 그냥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더라. 멍한 그 시간은 사람의 멱살을 끌고 자꾸만 동굴 속으로 파고드는데 그 감정의 곤두박질이 여간하지 않더라고. 내가 생각하기엔 너랑 나랑은 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되더라. 종이를 싹 자르듯 잘라낼 수 있는 사이였다면 너에게 이렇게까지 마음이 쓰이진 않았을 거라 장담해.


아무런 대화가 없을 때도 공기의 어색함이라곤 딱히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 않지만, 그래도 뭐라고 말을 불쑥 꺼내보고 싶을 때가 있어. 지난 우리의 시간들, 앞으로 각자의 시간들, 그리고 흔한 연애 이야기. 너무 소소하고 시시껄렁한 이야기라 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의미 부여를 하자면 이런 이야기들이 그래도 지금의 우리에게 부담스럽지 않은 거라 믿어. 대화에 속도가 붙고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쌓이면서 한편으론 또 걱정을 하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이 마냥 편하진 않으니까.

집에서 멀리 나오며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갈 때면 묘한 해방감을 느끼곤 해. 익숙한 일상이 아닌 낯선 비일상을 내 발로 찾기엔 무척이나 어려워졌으니까. 수면 위로 낮게 던지면 통통 튀는 작은 조약돌처럼 비일상은 일상 위에 살포시 얹을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닐까. 쳇바퀴 돌 듯 같은 패턴으로 사는 우리에겐 그런 조약돌 같은 비일상이 필요할지도 몰라. 우리의 내일은 어떨까. 동전을 던져 한쪽의 확률로 단정 짓고 싶진 않아. 단지 동전 던지기 게임이 필요 없는 하루이길 바라는 마음이야.


마음이 불안한 날엔 손을 가만 두지 못했어. 어디 손뿐인가. 안절부절못하지 못해 이리저리 발길을 옮기는 것도 부지기수였지. 그런 날 두고 정신 사나운 가만히 있으라 한 이는 다행히도 없었어. 아. 그런 말은 했지. 그냥 편하게 있으라고. 그런데 말이야 쉽지. 가장 어려운 게 불안한 마음으로 몸은 편하게 있는 게 아닐까. 동갑내기까진 아니라도 나이가 엇비슷하면 모를까. 나이가 많은 이들 사이에서 편하게 있기란 마치 자대 배치를 받고 신병 구경 온 선임들 사이에서 차렷 자세로 앉아있는 것과 같았어. 그러고 보면 어지간한 게 다 불편했단 생각이 들어. 자연스러운 것들마저도 내겐 비합리였고 부당했으니. 그래서 손을 좀처럼 가만히 내버려 두질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태풍이 올라온대. 조금은 재밌는 말이야. 태풍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올라온다니. 그러고 보면 태풍에 이름을 붙인 것도 어쩌면 이름을 불러서 좀 얌전히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렇잖아. 그냥 하지 말라는 것보단 이름을 붙여서 하지 말라면 뭔가 더 말을 잘 듣게 되는 거.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고. 또 밤이야. 눈 붙이고 일어나면 또 아침이겠지. 마음 편히 먹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우리 마음 편히 먹자. 지금까지 잘해온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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