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으면 돈도 휴가도 주는 세상
"남편이랑 같이 육아휴직을 냈어. 나라에서 육아휴직수당 3+3을 적용해줘서 빠듯하지 않게 잘 지내고 있어."
"…이 놈의 나라! 애 낳는 사람한테 왜 이렇게 후한 건지. 내 세금! 다 애 낳는데 퍼주는구먼!"
"나도 세금은 많이 내 거든? 나도 고용보험 십수 년간 낸 사람이야."
육아휴직을 마치며 처음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자리에 나갔다가 근황 이야기 중에 갑자기 발끈하는 친구 덕에 조금 기분이 상했다. 그래도 이십 년 지기인 만큼 웃어넘겼다. 난 곧 육아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복귀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막연히 출산 후에 주어지는 많은 혜택들이 마냥 부러웠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게 아이와 웃을 시간이 되고, 아이를 키우는데 보탬이 되는구나 하고 몸소 체험 중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부모휴가'가 생기던 해에 출산을 하고 복직을 한 직장 동료가 연차가 꽤 늘어난 것을 보고 마냥 부러워했었다.
"우와 그럼 연차가 몇 개가 더 생긴 거야? 엄청나네! 나도 아기 낳고 싶다."
"… 너는 너의 연차를 다 너를 위해서 쓰지만, 나는 아이를 위해 내 연차를 모두 써야 해. 아이 방학, 입학식, 병간호…"
"어휴…. 그럼 내가 더 낫네. 난 날 위해 여행 가고 쉬고 하는데. 미안 미안."
나도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를 낳고 생기는 수많은 혜택들이 부럽고 또 때로는 역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월급을 받고 하면서 부모가 되었다는 이유로 늘어나는 부양가족수당에 유급휴가가 몹시도 크게 느껴졌다. 또 연말정산을 할 때마다 부양가족이 없는 나는 늘 세금 폭탄을 맞았고 부양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늘 13월의 월급을 받아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애써 '품앗이'라고 생각하면서 옹졸한 마음을 누그러트렸다. 결혼도, 아이도 인생 계획에 없었던 나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인생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니까 하고 넘겨버렸다. 그래도 그런 옹졸한 마음을 가졌던 탓인지 결국 내가 도마에 오르고 말았다. 비혼을 선언한 친구의 볼멘소리가 듣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그 마음도 이해는 갔다. 그 옆에 임신한 친구는 육아휴직수당을 어떻게 받는 거냐며 다시 묻기도 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겪고 있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다 제각기 바쁘고 삶은 고달프니까.
그런데 이게 맞서서 으르렁거릴 일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낳고 어떤 사람은 낳지 않는다. 줄어드는 인구를 걱정하며 국가와 사회는 아이를 낳는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 어떤 사람은 무관심하고 누군가는 분노하기도 한다. 이 문제는 선과 악의 문제도 아니고, 호와 불호의 문제도 아니다. 개인의 선택이고 다양한 삶의 모습이다. 언젠가는 인구를 줄이기 위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아이를 낳는 사람에게 혜택이 없거나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역차별이라며 맞서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을까. 그냥 사회의 흐름 속에서 생긴 작은 이벤트일 뿐인데 이걸 굳이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이 되는지 생각했다.
아기를 낳았다고 육아휴직 수당과 육아수당을 받는 나를 보고 엄마나 할머니는 세상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기를 낳았다고 나라에서 돈을 주다니 세상이 참말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작게 웃으며 "세상이 좋아졌어요. 할머니 아기를 낳았다고 나라에서 돈을 막 줘요."라고 대답했다. 요즘 세상에 늘어나는 사교육비에 각종 고충들을 일일이 늘어놓아가며 그때가 좋았는지 지금이 좋은지 대결할 일은 아니니까. 실제로 육아휴직을 하면서 그런 혜택들이 조금은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우는데 보탬이 된 것도 사실이다.
"왜 혜택을 주는 거야?"라는 질문에 굳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발끈하며 대답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주길래 난 받는 것뿐이야." 정도의 대답이 명쾌하지 않을까? 세금은 적금이 아니고 말 그대로 세금이고 그 세금을 어디다 쓰는지는 나라가 정하는 일이니 그 복지혜택의 차이를 서로 다툴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또 사정이 역전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복직을 하며 돌이켜 보면 내 아이를 24시간 내내 케어할 수 있었던 육아휴직 기간은 그야말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 서로만이 존재하는 시간을 넘어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합쳐 거의 1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난 13년간 직장에서 쌓인 여러 가지를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육아로 집 밖 외출이 자유롭지 않았던 탓에 온 몸에 근육이 다 빠져서 10kg이 넘는 체중이 빠져버렸지만, 정신은 그 이상 채워졌다. 직장 생활 10년이 넘어가면서는 번아웃으로 고통스럽던 머릿속은 비울 것은 비우고 다시 정리할 것은 정리해서 맑게 채워졌다. 진작 나에게 이런 시간이 주어졌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직장으로 돌아가면서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아쉽지만 아이가 내 품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가게 키우는 것이 내 육아의 목표이니 조금 일찍 첫 단계에 들어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리고 선배 워킹맘의 이야기대로 나의 모든 연차는 당분간 나의 아이를 위해 쓸 예정이다.
아가야.
엄마는 일 하는 게 좋아. 너를 위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이상 엄마는 엄마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있어. 하지만, 엄마의 일이 너와 비교될 정도는 아니야. 네가 나온 순간부터 너는 엄마의 1순위고 모든 것 보다 우선이야. 언젠가 엄마의 일과 너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오면 엄마는 주저 없이 너를 택할 거야. 엄마의 품에만 있다가 이제 어린이집도 가야 하고 새로운 환경과 사회에 적응하게 될 네가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엄마는 엄마의 일이 너를 더 좋은 사람으로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믿어. 엄마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것들 중에 많은 부분은 엄마가 직장에서 경험하고 얻은 것들이 차지할 거야. 그러니까 너는 너를 믿고 그리고 엄마를 믿고 함께 잘 적응 해나 가보자. 사랑하고 늘 고마워. 엄마에게 와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