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속의 삶, 충동 욕구
나는 이제 솔직해지고 있다.
사실 솔직하고자 마음먹은 지 얼마 안 되었다.
나는 얼마 전까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충동적이고 스스로를 잘 제어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가스라이팅을 가혹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몇 년간 이런 생활을 이어가다가, 우연한 기회로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는데, 예상치 못한 나의 문제점과 어려움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인생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감정을 무시하고 살았고, ‘왜 이런 감정을 느끼지? 이겨내야지’라며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평소에도 나는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는 말을 많이 했었고, 실제로 나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사람은 계속 바뀐다)는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스스로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아니, 스스로의 감정을 왜 무시하고 살았던 것일까?
상담가님과 나눈 질문과 답변들의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상태를 파헤쳐 나갔다.
친구가 없는 이유, 모든 사람들과 벽을 치는 이유 등을 생각해 봤다.
남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 나를 발견했다.
내가 바라는 어떤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 그렇게 보이기 위한 행동과 말들만 하고, 그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 심지어 생각조차 머릿속에서 부정했다.
‘가면’을 쓰고 살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왜 남들의 눈치를 보며, 남들에게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어렸을 적 종교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교회를 다니며, 신과 남들을 위해 살아가는 선교자들의 모습과 설교 속의 가르침들이 나에게 깊숙이 자리 잡은 것 같았다.
또한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가르침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남들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등의 말씀을 매일 듣고 자라다 보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고 그게 당연한 내 모습인 줄로만 알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어떤 감정이든, 내가 얼마나 힘들던 나보다 ‘남’이 기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을 엄청나게 해 왔던 것 같다.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거나 반응하지 못하는 때에는, 오히려 침묵과 단절을 통해 이미지 관리를 했다.
이 모든 노력은 나에게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가져왔다.
매일매일 피곤에 절어 살았던 이유가, 매 순간 긴장 속에서 남들을 의식하며 가면으로 보이기 위한 노력을 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깨달은 뒤,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즉,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내 감정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 뒤로 난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상대방의 행동과 말에 솔직한 내 감정을 느끼고자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오해하거나 꼬아 듣는 일이 적어졌고, 상대방의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듣게 되었다.
왜냐? 이제 내 반응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먼저 ‘왜 이런 말을 했지? 어떤 생각으로 한 말이지?’라는 필터링을 거치고 나면 내 감정은 생각보다 후순위로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감정이 먼저여야 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감정을 알아차리려고 노력했다.
감정에 솔직해지고자 노력한 뒤부터는 내 반응이, 내 말이 상대방에게 무례하거나 안 좋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일부러라도 솔직히 내 마음이 느낀 감정과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100% 그대로는 어려웠다. 하지만 거짓 없이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하고자 했다.
신기한 변화가 생겨났다.
벽이 허물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벽은 내가 친 벽뿐만 아니라, 남들이 나에게서 느끼는 벽도 포함 됐다.
왜 그럴까 고민해 보았다.
고민해 본 결과, 내가 친 벽이 남들에게도 어색하고 부적절하게 느껴졌을 것이라는 결론에 닿게 되었다.
내 말과 행동으로 생성된 벽이 양방향으로 세워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솔직한 반응을 하면 남들도 나에 대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고 느낀다.
나를 파악하게 되고, 내가 어떤 마음인지 내 반응과 말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투영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비록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생각하고자 한다.
지금은 ‘나’를 이해하고 나라는 사람을 파악하는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변화였다.
또한 매번 긴장하던 내 마음과 머리의 긴장이 풀어지며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었다.
항상 가면을 쓴 뒤, 남들을 살피고 눈치 보며 행동하고 말했던, 아니 말조차 하지 않았던 그 모든 노력과 시간들은 그대로 내 에너지를 닳게 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피곤함이 줄어들었고, 어색함도 줄어들었다.
첫 번째 변화였다.
그리고 상담은 계속 이어졌다.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에 이어서, 나의 충동적인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TCI"라는 검사를 통해, 나의 기질과 성격을 알아보았고, 그 결과 나에겐 충동적인 기질이 크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매 순간 새롭게 하고 싶은 일들과 가고 싶은 여행지가 떠올랐고, 돈에 대한 욕구는 나에게 순간적인 충동감을 엄청나게 부여했다.
이 욕구는 제어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는 제어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못했다.
이게 '충동'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이런 충동들을 제어한다면, 잘못되었던 투자나 섣부른 판단들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것과 관련된 상담을 이어서 진행했고, 상담을 통해 터널 끝에 보이는 희미한 빛 같은 작은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내 목표와 충동의 연관성이다.
나는 ‘돈’을 너무나 밝혔다.
꽤 괜찮은 회사에 들어와서, 어느 정도 적성에 맞는 업무를 하다 보니, 나에게 남은 목표는 ‘돈’ 밖에 없었다.
그렇다. 내 인생의 마지막 목표를 ‘돈’으로 삼고 살았다. 한 마디도 틀림없이 진심이다.
돈을 목표로 삼은 이유는 ‘자유로운 삶’을 꿈꿨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상담을 이어 나가다 보니, 내가 원하는 게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럼 무엇일까?
바로 ‘내 충동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자유란, 매 순간 떠오르는 내 충동적인 욕구들을 매 순간 매번 완벽히 해소시킬 수 있는 것, 즉 자유로 치부된 ‘충동 해소’였던 것이다.
상담 동안 나는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돈을 원하는 이유가 이러한 ‘자유로운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는 것까지는 알았지만, 충동과의 정확한 연관성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담가 선생님이 가설을 제시해 주셨다.
“반대로 충동 때문에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요?”
말이 멈추었다. 아니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순간,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충동’, ‘인생 목표’, ‘돈’ 이 세 가지를 연관시켜 본 적이 없었다.
오랜 시간의 침묵 끝에 다시 한번 희미한 생각의 가닥을 붙잡고 생각을 이어갔다.
수많은 충동들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매 순간 충동을 해소시키기 위한 ‘돈’이 필요하네? 난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사실은 충동)을 다 하며 살고 싶은데, 그러면 돈이 많이 필요하네?
아, 나는 돈이 필요한 이유가 내 ‘충동’을 이루기 위해서인가?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상담가 선생님은 한 가지 예시를 들어주었다.
“갑자기 라멘이 너무 먹고 싶어서 일본에 가고 싶어질 수 있겠죠? 그래서 비행기를 찾아보니 퍼스트 클래스만 남아 있고요. 돈이 많다면 퍼스트 클래스여도 일본에 라멘만을 먹으러 다녀오실 건가요?”
내 대답은 “네, (물론) 갈 것 같습니다”였다.
실제로 질문을 들으며, 일본이 가고 싶다 느꼈고, 돈이 많다면 아깝더라도 갈 것 같기 때문이다.
그 뒤 다시 생각에 잠겼다.
아 내가 이러한 충동을 이루고 해소시키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것인가 보다.
돈은 내 충동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머리가 개운해졌다.
내가 왜 그토록 돈에 미쳐서 살았는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인지 머리인지 모를 어딘가의 깊숙한 내면의 작은 소리를 그 순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돈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사람’ 일지도 모른다는 정반대의 판단이 들었다.
난 충동도 제어하고 싶고, 돈에도 이렇게 미쳐 있고 싶지 않고, 인생 목표도 내가 정말 원하고 하고 싶은 내 감정이 반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싶었다.
내면의 깊숙한 목소리가 서서히 마음이라는 어떠한 형체의 표면을 감싸기 시작했다.
개운해지는 머리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 해소감.
어쩌면 내가 충동을 제어 또는 없앨 수도 있고, 돈을 간절히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인생 목표를 앞으로 제대로 고민해 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내 주변을 채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