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해방 시간
'충동'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 이후부터, 동일한 또는 유사한 일로부터 느끼는 충동감이 점차 감소하는 것을 느꼈다.
“충동이란 걸 알게 되면, 그 이후 동일한 일에 의한 충동감은 줄어들 수 있다”라는 상담가님의 말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충동이란 것을 깨달은 일이, 그 이후부터 나에게 주는 충동감을 줄어들게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매 순간 느끼던 충동감이 점차 줄어들더니, 이제는 쉽사리 충동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충동이라고 느끼는 일이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 든다.
지금도 그렇다.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인지하지 못하는 ‘충동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이 이렇게 평안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잔잔한 수면처럼 느껴질 때도 종종 있다.
정말 잘 된 일이다. 내가 이렇게 변할 줄 몰랐다.
그렇게 나에겐 ‘여유’라는 게 찾아왔다.
졸업 후 근 몇 년간 느껴보지 못한 여유가 찾아왔다.
이전처럼 충동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로 얻은 번아웃에 의한 강제 휴식이 아닌, 충동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생긴 ‘충동 해방 시간’이 생겼다.
이 충동 해방 시간은 나에게 잠을 선물해 줬다.
하고 싶은 게, 해야 하는 게 없으니 퇴근 후 마음의 조급함이 사라졌고, 뭘 해야 한다는 압박감, 부담감도 사라졌다. 돈에 대한 압박감도 신기하게 완전히는 아니지만 사라졌다.
몸이 피로한 게 느껴졌다. 그렇게 일찍 잠에 들어보았다.
매일 5시간 전후로 잠을 자며 기상의 피곤함을 만끽했던 나인데, 어쩐 일인지 그날은 일어나는데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크게 없었다.
눈을 뜰만 했고, 일어날만했다.
신기한 변화였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놀라울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갔다.
컨디션이 정말 좋았다.
이처럼 머리가 잘 돌아간 적이 언제였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매일 무언가를 하던, 무언가를 이루려 노력하던 시간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잠에 든다는 것이 사실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발버둥 치며 방황하던 그 시간들이 한꺼번에 멈춘 느낌이었다.
하지만 잘 알고 잘 느꼈듯이, 그 시간들 그 노력과 행위들이 결코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님을 확신할 수 없기에
그러니까, 충동감에 의한 그 일들을 이루기 위한 몇 년 간의 노력, 그 습관들을 잘 알기에 아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충동’을 이루기 위한 노력과 시간은 이제 ‘낭비’와 같다고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시간들을 차라리 잠에 소비함으로써 다음날의 나를 위한 원동력을 만든다면,
더 가치 있는 시간으로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게 맞다고 지금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하루를 더 일찍 잠에 들었다.
하지만 이전 날처럼 개운하진 않았으나, 마음은 신기하게 평안했다.
마치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해수욕장에 가슴팍까지 들어가, 가슴으로 파도의 움직임을 느끼는 듯한 기분이었다.
편안하게 묻었다가 흘러내려가는 물줄기처럼 하루의 시간이 부드럽게 흘러 지나갔다.
그렇게 나에겐 평안한 순간이 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