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세와 31세, 용기 있는 자들의 만남

적지 않은 나이

by 권다이


자전거도로로 오는 덕분에, 숙소로 가는 길이 더욱 멀어졌다.

북한강 건너 멀리 내가 묵을 숙소가 보이기 시작했고, 믿고 싶지 않을 거리의 저 멀리 이 북한강을 넘어갈 수 있는 거대한 다리가 보였다.


자전거도로를 안 탔다면, 이미 도착했겠지?라는 생각이 들며 약간의 후회도 되긴 했지만, 긴장감 속에서 두려움 없이 안전히 왔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저 거대한 다리를 걸어서 건널 수는 있는 건가?라는 의문과 걱정이 넘실대던 그때,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체격이 좋으신 50대 초반정도 되어 보이는 어르신께서 절뚝이는 내 다리의 속도보다 힘차고 빠르게 걸어오고 계셨다.

두려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 속도를 더 내기 시작했지만, 그의 속도를 이겨내진 못 했다.

그가 마침내 내 뒤에 따라붙은 순간 난 바로 우측 모퉁이 길로 빠졌다. 먼저 지나가기만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까지 가세요?"

나는 춘천까지 가지만, 오늘은 반대편 숙소에 묵고 내일 떠날 길이었기에 우선 춘천까지 간다고 했다.

그는 "음.. 오늘은 못 갈 텐데?"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앞선 사실을 말했고, 그는 자신이 두 번 정도 춘천까지 걸어봤다고 말해주었다.

춘천까지 60km 정도 걸었으며, 10시간 30분 정도가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내게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나는 95년생, 31살이며 반도체 회사를 다닌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자식이 34살이며 자신은 68세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놀랐다. 아무리 보아도 50대 초반으로 보이셨기 때문이다.

‘걷고 운동하고 여행하는 게 젊음의 비결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는 내게 "적지도 않은 나이인데, 용기 있네"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움찔했다. 왜냐면 난 항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젊은 나이라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아, 맞아. 나 31살이지. 난 아직 어린 청년 같고, 뭐든 도전해 볼 수 있는 젊은 사람 같은데, 아 근데 나 31살이구나, 내가 어린 나이는 아니구나.’ 여러 생각이 나의 뇌에 노크를 하는 듯했다.


어쩌면 회피하고 있던 ‘나는 31살이고, 어리지 않은 나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대화에서 '나'에 대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적지 않은 나이라 깨닫게 해 주신 어르신께 정말 감사하다.

그 사실 덕분에 앞으로의 인생 방향 설정 그리고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무모하게 그리고 쉽사리 도전하는 모습이었던 과거의 나는 나 자신을 알지 못한 영향이 분명히 있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게 "공룡 능선은 예약하기 힘들다, 14시간 동안 산의 능선 약 5km를 걸어야 한다, 4일 뒤 전국 차여행을 떠난다, 인제 백담사를 꼭 가봐라" 등의 다양한 여행지들을 추천해 주었다. 듣다 보니 가보고 싶어 져서 메모장에 기록도 해 두었다.

어르신께 저 다리 사람도 건널 수 있냐 물어보았다. 왜냐하면 산과 산을 잇는 거대한 고속도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고, 가는 길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그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곧바로 다리로 향했다.



두려움이 느껴지는 차선 옆 약간 나있는 도로를 통해 걷기를 잠깐, 웅장하고 거대한 그리고 한없이 높은 북한강 ‘신청평대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워낙 높아 바람도 세고, 차들도 쌩- 달려서 두려움이 먼저 들었다.

다리 아래를 쳐다보았다.

나룻배 같은 작은 배 위에 작은 파라솔을 피고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는 분, 강에 들어가서 낚시와 다슬기를 잡으시는 분 등이 계셨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니 주변 산들과 구름 그리고 사람들이 마치 옛날 선조들이 그린 동양화의 한 풍경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들었다.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그때 체감했다. ‘아, 나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구나, 번지점프니 스카이다이빙이니 도전해보고 싶다던 모습들은 나의 두려움을 인지하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용기를 가진 내 모습이었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가 날아갈까, 혹여나 지금 내 다리 상태 때문에 바람에 몸이 넘어가진 않을까, 위험하면 땅에 누워야겠다 등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렇게 다리를 무사히 건넜고, 다시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긴장이 풀렸는지 내 다리는 엄청난 통증을 느끼게 했다. 약간 한기와 함께.

몇십 미터 거리를 걷다 멈추다를 반복했고, 운이 안 좋게도 숙소까지의 길은 차도와 산길이 섞인 길의 연속이었다.

무서웠지만 빨리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최대한 빨리 걸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시속 4.2km, 앞으로 편의점이 없을 것 같아 눈에 보이는 세븐일레븐을 들어갔다. 과자 한 개와 사이다, 맥주 한 캔을 샀고, 다시 얼마 안 남은 길을 나섰다.



숙소 근처에 봐두었던 짜장면 집을 혹시나 해서 검색해 봤더니, 이런 휴무였다.

급하게 눈에 보이는 막국수 집에 들어갔다. 저녁도 면이었다.

다행히 맛은 있었으나 다리가 문제였다.

다리가 부서져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사장님께서 계산 후 말을 거셨다.

"휴일마다 비가 와요" 나는 대답했다. "아 손님이 별로 안 오나요?"

"네, 쉬는 날마다 비 오고, 겨울에는 눈도 많이 쌓이고.."

"아 여기 눈도 많이 오나 보네요?" 사장님은 대답했다. "네 눈이 무릎까지 쌓여요."

그녀의 말에 적지 않은 아쉬움과 힘듦이 느껴졌다.

잘 먹었다는 말과 함께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며 길을 나섰다.


다시 차선을 밟으며 걸어가는데, 이제는 다리가 말을 안 들었다. 절뚝임을 넘어서 가까스로 움직여지는 다리.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음을 느꼈다.

그렇게 이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숙소 중 하나인 "지중해 모텔"에 입성했다.



사장님은 도보 여행자임을 물으며, 302호 높은 곳으로 방을 배정해 주셨다. 사장님이 밉게 느껴졌다.


오기 전 어느 정도 리뷰를 봤지만, 이 정도로 고풍스러운 분위기인 줄 몰랐다.



고풍스럽다는 말이 이런 때 쓰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90년대 한창 유행했을 법한 화려한 색상의 조명과 어두운 복도, 다양한 꽃 그림 액자들이 층마다 꾸며져 있었고, 나의 구원자가 되어준 302호도 작지만 깔끔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그렇게 나는 붕대와 반창고를 벗겨내고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 샤워를 했다.

두통이 찾아왔고, 오한이 느껴졌다.

그렇게 약간의 휴식을 가진 뒤, 잠을 청했다.

그렇게 찾아온 새벽, 극심한 두통과 오한이 나를 괴롭혔다.

오랜만에 느껴본 간절함.

'아, 병원 가고 싶다. 약 먹고 싶다.'


하지만 새벽 3시경 혼자 1층으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겁이 많다는 사실을 그 새벽에 깨달았다.

두통을 피하기 위해 앉아도 보고 잠자리의 방향도 바꿔보길 반복하던 중, 왼쪽으로 돌아 누웠을 때 두통이 약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아, 그전에 할 말이 있다.

난 다음날 춘천을 향해 다시 걸음을 뗄 자신이 없었다.

다리가 부서질 듯했고, 오한과 두통은 춘천을 가고 싶다는 욕구를 단 한 톨도 가지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이번 도전을 포기했다. 깔끔하게.

큰 아쉬움은 없었다. 내가 못 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회사에도, 부모님에게도, 여자친구에게도 춘천까지 걸어갔다 온다 말해둔 상태였기에, 포기하는 게 조금은 아니 꽤 많이 쪽팔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포기할 줄 아는 사람.


이전처럼 내가 되고 싶은 모습만을 생각하고 끼워 맞추며 살았다면, 아마 여정을 억지로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뿌듯함을 느끼겠지?

‘아, 역시 나는 이 어려움을 이겨내고 극복해 내는 엄청난 사람이야, 나는 대단해, 나는 역시 무엇이든 해내고 이룰 수 있어!’라는 착각과 더 큰 충동에 반응하기 적절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정을 그만 둠으로써 나는 느꼈다.

아, 나는 내 상태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내가 겪고 느낀 내 감정과 상태를 잘 파악하고 그것에 대응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를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다.

느낀 그대로, 내 상태와 감정에 적절히 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일어나서도 두통은 여전했다. 약간의 쉼을 가진 뒤,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기고 콜택시를 불러서 청평역으로 향했다.



짐은 이전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고, 발가락은 어느 정도 회복 되었으나 오금과 발목의 통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곳 청평의 평화로움은 나에게 반갑게 다가왔고, 조금은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 앞의 스테이션이라는 카페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다.

생각보다 청평을 찾는 사람은 꽤 있었고, 이곳 카페를 찾는 사람도 꽤 있었다.

커피와 케이크는 비쌌다. 하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역 앞에 식당도 없고, 카페도 이곳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카페를 나온 뒤, 식당을 갈 컨디션이 아니어서,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경춘선 열차를 타고 이 여정을 마무리했다.



짧지만 강력한 경험을 선사해 준 도보 여행이었다.

더 많은 감정과 경험들이 있었지만, 나에게 변화를 일으킨 사건들을 적어두었다.

먼 훗날 이 글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될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때는 내가 어떤 상태일지, 과거의 나를 자랑스러워할지 또는 부끄러워할지 또는 추억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게 용기 있던 도전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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