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면 안 되는 관계

후회할 시간들

by 권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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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운 관계가 있다.

내가 밑바닥을 찍게 되어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 또는 순간이 와도 나를 지지해 줄 사람들.

불행하게도 나에겐 그분들이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운 관계의 대상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무수히 주시던 어머니, 차갑고 무섭지만 책임감이라는 무게로 사랑을 전하던 아버지.

왜 그들께 나는 이토록 불편하고 힘든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들의 교육과 훈육이 나의 성장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던 걸까?

앞선 장에서 언급한 적이 있었다.

종교와 배려의 역효과에 대해서.


그 교육과 훈육은 나를 마치 잘 빚어진 그릇 또는 항아리처럼 보이게 했다.

가장 빛나고 특별해 보이는 존재로 그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온갖 노력들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마치 기나긴 시간을 고온 속에서 버틴 도기 마냥 스스로를 아름답다 착각하게 만들었다.


커피를 담았을 때, 케이크를 담았을 때, 쌀을 담았을 때

이 모든 순간들에 적절히 그리고 완벽히 빛나는 존재로 보이려 노력했고, 그 빛은 당연히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아니, 어쩌면 태초부터 그 빛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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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 인해 나는 '나'를 알지 못하고, 스스로를 어떠한 상황에서든 빛나는 존재로 착각시키며 그렇게 매 순간 껍질을 바꿔가며 살아왔다.


상담을 통해 이 사실을 발견했을 때 엄청난 충격과 함께 그토록 찾고 싶었던 갈망했던 무언가를 발견한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앞서 말한 관계의 불편함은 더욱 크게 느껴졌고, 미워하는 감정과 함께 그들을 향한 불만이 마치 장맛비처럼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섞여 들어왔다.

그들의 마음과 방향에는 잘못(적어도 나를 해하려는)이 없다는 것을 나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불만과 미안함이 공존하는 이 불편한 마음.


충동들 속에서 방황할 때에는, 진짜 바빠서 연락이 귀찮았다.

전화받는 것도 귀찮고 그리고 그들의 관심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런 충동 속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지금도 여전히 불편하고 귀찮다.

특히 요즘 연휴 맞아 온갖 핑계로 매일 전화를 거는 엄마.

이러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지만, 나에게 의지하는 게 너무 크게 느껴져서 힘들고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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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엄마의 버팀목이어야 하고, 가장 크게 의지가 되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일까.

난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어줄, 버팀목이 되어줄 상황도 상태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불편함이 사라진다고 해도 그 ‘의지함’에 대한 불편함은 여전할 것 같다.

나는 엄마가 생각하는 그 착하고 배려심 깊은, ‘도자기’가 아닌데 말이다.

아직도 엄마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존재로 믿는 것 같다.

나는 착하지 않고, 내 감정이 시키는 대로 살아갈 사람임을 그들께 알려야 할 것 같다.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권다이’가 아닙니다. 나는 내 감정대로 내 느낌대로 판단하고 살아갈 존재입니다.

당신이 나에게 의지하는 것이 불편하고, 착하고 배려심 있고 사려 깊은 아이로 생각하는 것도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그렇게 의지를 해 줄 만한 상황도 아닙니다.

물론 당신은 그런 의지가 필요할지 몰라도요.

나는 그럴 상황도, 상태도 아닙니다.

그러니 저에게 짐을 주는 듯한 행동을 그만해 주십시오.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든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나로 살아 내기에도 너무나 힘이 듭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충분하면 충분한대로 살아내 주세요.

엄마의 상황에서 엄마의 삶을 충분히 살아내 주세요.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여주세요.





이 글을 쓴 지 몇 주가 지났다.

쓰고 나서 업로드를 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앞으로 난 가면을 쓴 채 살고 싶지 않아요."

나보다 남이 먼저인 삶이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고, 굉장히 후회가 된다는 것을 알렸다.

부모님은 별다른 말 없이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부모님과 연락을 안 하였다. 문자도 오지 않았다.

무소식은 마치 "너 힘들구나, 잘 이겨내길 바란다"하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며칠 뒤, 요양원에 계셨던 외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전, 어머니는 큰 수술을 치렀다.


그리고 다시 본 이 글은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아들인지 명백히 느끼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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