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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Jan 31. 2023

세 사람

(4)

인고의 시간과 노력 끝에 먼 마을로 떠난 두 사람이 새로 차린 목공소에는 손님이 점차 끊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도 나이가 많이 들어 힘에 부쳤던 까닭으로 어느덧 장성(長成)한 두 사람의 자제(子弟)들에게 일을 맡기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휴양(休養)하였다. 다른 날처럼 어김없이 길을 가던 차에 초목이 우거진 산이 먼발치에서부터 두 사람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은 이끌리듯이 그 산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낯선 듯 낯에 익은 듯 이어진 길을 따라 도착한 마을은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 목수로 같이 일하기 시작한 바로 그 마을이었다. 두 사람은 완전히 바뀐 마을의 모습을 바라보며 세월을 체감하였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불에 다 타버렸던 야산이 이토록 푸르를 수 있는가 하며 한참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궁금해했다. 자신들이 목공소를 세웠던 장소에 지금은 무엇이 있을지 여러 가지 추측을 해보며 발길을 옮겼다. 그러나 두 사람의 여러 가지 추측은 모두 틀리고 말았는데, 웬걸 목공소가 하나 서 있는 게 아닌가.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안에 누구 계시오?”

“누구세요? 어?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선생님들! 정말로 잘 오셨습니다. 잠깐 들어오시죠. 꼭 드릴 말씀도 있거든요.”

목공소 주인은 두 사람을 대번에 알아챈 듯 두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환대해줘서 고맙소만, 우리가 누군지 아시오?”

“여기 차 좀 드세요. 선생님들은 역시 절 못 알아보시는군요. 원래 두 분께서 이 자리에서 목수로 일하셨잖습니까? 성탄절이면 아이들에게 책상이랑 의자를 선물로 주시고…. 제가 그때 그 아이 중 하나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요, 그래도 두 분은 많이 안 변하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서야 눈앞의 낯선 사람이 보이는 반가움에 대한 경계를 풀고 차를 조금씩 들이켰다.

“아아, 벌써 이렇게나 컸구먼. 기억해줘서 참 고맙네. 그나저나 우리가 여길 떠난 지도 한참 되었는데 자네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는 건 무슨 말인가?”

“그 이야기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곧 밖에서 작업하던 친구들이 올 거거든요. 이 친구들도 다 선생님들을 기억하고 있어요. 기왕 오신 거 저녁까지만 함께 드시죠.”  

  

다른 목수들이 일을 마치고 목공소에 돌아와,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고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다.

“음식은 입에 좀 맞으십니까? 좀 더 좋은 걸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네, 입에 잘 맞네. 자네도 그렇지?”

“응? 아, 그럼. 이렇게 귀한 대접받는 게 어딘가? 그보다 할 말이란 게 뭐였는지 이제 좀 알려주게. 내가 예전과 다르게 성미가 좀 급해져 그러네.” 

“몇 개월 전에 두 분이 처음 목수 일을 시작하실 때 같이 하셨던 선생님께서 여기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분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두 분이 겪으신 일을 전혀 모르시더군요.”

“아니, 누가 찾아왔다고?”

“하하,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있었던 일을 전부 다 그분께 잘 설명해드렸는데요, 그분이 눈물을 쓱 훔치시더니 메모 하나랑 수표 두 장을 내미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메모랑 수표 한 장은 두 분 앞으로 남기셨고 다른 수표 한 장은 저희에게 주시면서 의뢰 하나를 맡기셨습니다. 배를 만들어달라고 하시더군요. 두 분이 나중에 타고 바다를 건너실 수 있을 만한 배를요.”

“우리가 바다를?”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이 바다 건너서 오셨더라고요. 따로 주소도 남겨주셨습니다. 혹시 두 분이 여길 다시 찾아오시면 전부 전해달라고 하고 떠나셨어요.” 

“그러니까요, 두 분이 오실 줄 어떻게 아느냐고 해도 얼마나 막무가내시던지. 하여튼 아까 저희가 밖에서 만들던 것도 사실 두 분 드릴 배였습니다. 이제 배는 거의 다 만들어가는데 막상 드릴 방법이 마땅치 않으니 신문에 광고라도 낼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두 분이 여길 찾아오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저희가 좀 지나치게 반기는 것 같아도 이해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친구가 남기고 간 메모를 받아 펼쳐 보았다.

오랜만이야. 소식을 오늘에야 들었네, 무소식이던 걸 용서하게.

자네들 말대로 세상이 가는 데로 무작정 따라가는 게 정답은 아니었던 듯하네.

자네들을 이어 이 자리를 새로 지키고 있는 이들을 보니 오히려 따를 만한 삶을 살았을 자네들이 부럽기까지 해. 그래도 나 역시 영 실패만 한 건 아니네. 엎치락뒤치락하며 잃은 게 많지만, 돈은 많이 벌었어. 셋이 오랫동안 세계 여러 휴양지를 다니며 쉴 만큼은 되네. 자네 둘 앞으로 배를 하나 의뢰해뒀네. 배편을 구할 수도 있겠지만 자네들이 언제 여기 올지 모르니. 그리고 왜, 모험하는 게 꿈이었잖은가? 항해할 사람 구할 돈도 함께 남기네. 내가 사는 곳에 준비 많이 해두고 기다리겠네. 꼭 볼 수 있길 바라네.     


“음, 울다가 썼다는 것 치곤 잘 썼구먼. 근데 말이야, 모험하는 건 내 꿈이 아니었는데? 이 친구 꿈이었지. 내 배편은 구해줬어야 하는 건데.”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아이고, 농담으로 해본 말이네. 진정해, 진정. 자네들에게 참 신세를 많이 졌네그래.”

“아닙니다, 선생님들. 그리고 사실 저희가 중요하게 말씀드릴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말을 꺼낸 목수가 어렵게 입을 뗐다.

“저희가 이곳에 목공소를 짓고 목수로 일하게 된 건 감사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죄송한 마음 때문이기도 합니다.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사실 대부분의 저희 또래 친구들은 그날 다 보았습니다. 공을 차고 놀다 저녁때가 되어 집에들 돌아가던 길이었는데, 느닷없이 목공소에서 불이 나는 걸 봤습니다. 무서워서 곧장 집으로 달려간 친구들도 있지만 몇몇은 소방서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소방관들과 함께 돌아오는 그 사이에 산에 불이 난 것입니다. 먼 곳에서 시작한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번지더군요. 선생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불이 집으로 번질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소방관들에게 제발 산불이 난 방향으로 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제가 아니었다면 목공소에서 무엇이라도 건질 수 있었을 겁니다.”

그 말을 듣던 두 사람 중 한 사람, 즉 오랫동안 원망과 의문을 품고 있던 사람은 흐느끼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친구를 옆에 두고 다른 한 사람이 대답했다.

“아니야. 자네가 아니었다면 마을 전체가 불에 탔을지도 모르는 게 아닌가. 오히려 자네가 이처럼 다 말해줘서 고맙네. 우리가 갖고 있던 오랜 의문들이 풀렸거든. 산불이 났을 때 어찌해서 우리 목공소만 타버린 건지 궁금했었네. 그런데 목공소 안에서 불이 나기 시작한 것이니, 분명 우리 둘이 실수한 일이 있었을 테지. 우리가 입은 피해는 우리 잘못으로 인한 것이야. 그렇지만 마을의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아니잖은가. 듣고 보니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 둘의 실수까지도 사용하셔서 큰불에서 마을을 지켜주신 건지도 몰라.”

그때 잠자코 있던 목수 하나가 거들었다.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방금 이 친구는 그 일이 있고 며칠 동안 저희와 부모님들을 설득해 각 가정에서 성금과 물품을 모았습니다. 사실 밖에서는 민가 피해도 없는 우리 마을에 무엇이든 보내준 게 거의 없었거든요. 선생님들께서 받으신 건 다 마을 사람들이 드린 거였습니다. 물론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지 않은 집이 없으니 다들 선뜻 동참해주었던 것이겠지만요.”

“아아, 왜 특별히 우리 둘의 실수를 사용하셨는지도 짐작이 가네. 주께서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못난 선행에 대해서도 갚아주셨던 모양이네. 우리는 정말로 몰랐네, 전혀 몰랐어. 그만 울라고 하려고 했는데 자네 좀 더 울어도 되겠네그래.”

울음을 그친 사람이 대답했다.

“그간 주 앞에 원망하고 불평만 하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네. 나는 보고 들어야 믿겠노라 한 것이었어. 정작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하는 자면서 말일세.”

이후 두 사람과 목수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두 달이 지나, 이제 두 사람은 바다 위에 있다. 두 사람은 잘 만들어진 배를 타고 오래 만나지 못한 다른 한 사람을 만나러 가고 있다. 각 사람의 사고(思考)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신념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길도 갈렸으나, 이번에 만나면 서로에게 같이 있는 걸 나누게 될 것이다. 우정(友情). 

세 사람이 있었다. 세 친구가 있었으며, 우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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