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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장미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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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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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서른이 된 나는 한국의 경제 성장과 그 과정에서 소외된 현재 노인 세대의 빈곤과 노동에 대한 학위 논문을 작성하고 지난 8월 한국학 석사가 되었다. 아직 세계에 만연한 빈곤과의 싸움에 관심이 많은 나, 노동과 발전 분야 전문가인 장대업 교수님의 지도, 그리고 글로벌한국학으로 이름을 바꾼 전공이 어떻게든 어우러진 작은 결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보람이나 뿌듯함 대신에 곧 세상에 내던져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다니는 동안에는 몰랐는데 대학원에서 보낸 2년이라는 시간이야말로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실천했어야 할 마지막 유예 기간이었던 것이다.

물론 석사 과정 중에 영국에서 발전학이나 빈곤의 정치학을 더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내게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랬다면 마땅히 박사 과정에 필요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할 방법을 찾아보고 필요한 시험을 미리 보면서 준비했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여태껏 어떻게든 왔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되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만큼 나의 바람은 막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기적인 것이었다.

『변신』. 카프카의 그 소설은 주인공이 하루아침에 ‘흉측한 해충’으로 변함으로써 시작된다. 정말이지 어떤 악당의 최후로나 어울릴 법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게 의아했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주일 가량 아무도 아닌 채로 아무데도 가는 곳 없이 방 안에서 지내보니 내가 곧 그 소설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카프카는 상상이 아니라 관찰한 걸 쓴 것인지도 모른다.) 하다 못해 그레고르 잠자는 해충으로 변신하기 전에 가족을 위해 수 년 동안 밖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기라도 했지, 나는 여태 가족을 위해 돈 한 푼 제대로 벌어본 적이 없었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독립을 했어도 했을 나이에 공부한다는 핑계로 가산을 축내고만 있던 것이다. 외형만 벌레가 아니었지, 가정의 안녕에 해를 끼치기로는 내가 해충보다 더했을 것이다. 이윽고 나의 생각은 내 한쪽 다리 정도는 해충의 다리로 거의 변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래 맞다, 징그러운 털로 가득한 짙은 갈색의 그 다리!

헌데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이미 한계에 맞닥뜨리고 있던 나의 부모님은, 엄마랑 아빠는 나무처럼 아직 그 자리에서 날 기다려주고 계셨다. 내가 본인들처럼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리길 바라며, 바람 좀 부는 것으로는 흔들리지 않을 만큼 줄기를 튼튼히 하기를 바라며, 그리고 불어오는 비바람을 다 막아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마음으로. 바람에, 빗줄기에 그들 가지에서 잎들이 자꾸만 떨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노인 세대의 빈곤과 노동에 대해 공부했다면서 정작 내 부모님이 나이 들고 약해지는 건 본 체 만 체 하고 있었다니, 이건 사람 일이 그렇다고 눙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는 깊이 후회했다. 바라건대 나와 같은 후회를 하는 사람이 없기를! 뉘우치고 나서 나는 내 다리를 다시 보았다. 하나는 해충의 다리요, 다른 하나는 나무의 뿌리였는데 그래도 아직은 나 하기에 달려 있다고 느꼈다. 나는 잔털 가득한 해충의 다리를 잔뿌리 가득한 나무 뿌리로 바꿔놓겠다고 다짐했다. 뿌리를 내리고 나무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쉴 그늘을 많이 만들어줄 수 있는 큰 나무 말이다. 그 길로 나는 취업과 독립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런! 쓸데없이 내 소개만 세 장에 걸쳐 하다니, 다음 장에선 꼭 정원에 처음 방문하게 된 이야기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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