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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장미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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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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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금 어떤 목표를 갖게 된 건 장대업 교수님을 만나게 되면서였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을 때 교수님과의 첫 만남은 그렇게 유쾌한 게 아니었다. 첫 수업 성적을 확인하고, 나는 앞으로 장 교수님 수업은 듣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잘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B-’라니! 하지만 이후에 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마치 내가 다시 일어나기까지 언제까지고 시간이 날 기다려줄 거라고 믿고 있기라도 했던 듯 그간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던 것에 대한 대가를. 학과의 많은 사람들이 일찍이 복수 전공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등 각자의 길을 만들어나가는 동안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는, 나중에 장 교수님 수업을 최소한 몇 강좌라도 듣지 않고서는 졸업에 필요한 수강 과목 수를 채울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가급적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A+’ 한 번은 받아내고 말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해서 졸업 학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A+’를 받기까지 나는 장 교수님이 개설한 과목 전부를 들은 학생이 되고 말았다. 우스갯소리처럼 말하긴 했어도 마지막에서야 목표한 성적을 받게 된 건 진정 내게 좋은 일이었다. 만일 내가 한 번에 바라는 성적을 받았다면 나는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잘하는 사람이라며 금방 기고만장해져서 무엇이든 다시 비아냥대기 바빴을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 삶의 태도로 굳어졌다면, 나야말로 곧 주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 내 주위에 아무도 없었을 테지.

단번에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고 듣게 되는 교수님 수업이 늘어날수록 나는 점차 비아냥거리길 멈추고 정당하고 건전한 비판을 하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아무래도 그게 좋은 성적을 받는 길이었으니까 그랬다. 그리고 마침내 받은 ‘A+’라는 성적이 내가 얻은 가장 좋은 것도 아니었다. 무엇도 함부로 비웃지 않게 되었으니 말이다. 또 자신이 가지고 배운 걸 다른 사람을 돕는 데에 활용하는 교수님을 다시 보게 되며 나 또한 무엇을 위하여 살 것인지 재차 고민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쉽게도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나의 친한 친구들이 얄궃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한 것처럼 나에게는 유예할 기간이 있었다. 미뤄두었던 군에 입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주 금성산 정상에서 군인으로서의 일과를 마치고 독신자 숙소에 돌아가면 나는 고독 속에서 주어진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해야 할 ‘삶의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선과 악의 문제’를 두고 씨름하곤 했다. 나는 여러분에게 내 최근 모험담을 전하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적어도 여태까지 기록한 내용의 대부분은 군대에서 인생을 돌아봄으로써 내 머릿속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과거에 대한 미련을 많이 내려놓았던 것도 그때였다. 어린 시절의 내가 조금 더 똑똑한 아이였거나 하다 못해 중학생만 되었더라도 안과 의사보다 존 롤스 같은 정치 철학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리라는 게 이십대 중반의 내가 과거를 돌아보며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3년의 군 생활, 즉 친구들이 말했던 유예의 시간이 거의 다 지나갔을 즈음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했다. 인생에 찾아오는 불운은 여전히 막을 수 없고, 이제는 내 손으로 직접 질병이나 질환과 싸우길 기대할 수도 없게 되었지만, 아직 빈곤은 저지할 수 있고 또 내 손으로도 맞설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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