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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내 주위에 낯익은 꽃들이 더러 피어 있었고 또 저 너머에 피어있는 꽃들 중에도 내가 이름을 댈 수 있을 꽃이 몇 종류는 있을 것인데도, 나는 이 새로운 장소가 내가 살던 세계에 속하지 않은 곳이라는 걸 곧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봐, 이방인! 발 좀 치우시지?”
내 발치에서 작은 민들레 한 송이가 삐죽거리는 얼굴로 올려다 보며 이렇게 말을 걸어왔으니 말이다. 나는 기가 찼다. 내가 지구상의 어떤 장소가 아닌 아예 다른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이나, 눈 앞에서 꽃이 내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보다 날더러 이방인 운운하는 이 꽃이 민들레라는 사실에 더 어이가 없던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발을 슬쩍 치우며 말했다.
“오, 미안. 너는 민들레 아니니?”
짐작하겠다시피 나는 별로 미안하지 않았다, 잎을 밟은 것도 아닌 걸. 그래도 좋든 싫든 민들레의 말처럼 당시 나는 이방인이었고, 심지어 나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조차 모르는 표류자로서 궁금한 무엇이라도 좀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려면 가급적 이 삐죽이 꽃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그치만 뻔히 까탈스러운 상대인 걸 알면서 민들레가 아니냐는 말을 같이 고른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건 중의적인 표현이었다. 내가 다른 세계에서 왔음에도 네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 의미의 반가운 인사말인 동시에, 나보다 먼저라고는 해도 결국 네가 민들레인 이상 너 역시 언제인가 꽃씨 상태로 여기까지 날아들었던 이방의 존재가 아니냐는 반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다만 나는 이 두 번째 의미까지 잘 드러나길 바라지는 않았는데, 나는 나대로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말을 했다는 후련함을 느끼되 그 의미가 정말로 상대에게 닿아 기분 나쁘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얕은 아이러니가 내게는 이전부터 종종 스쳐 지나가는 혜성 같은 것이었다.
“민들레가 아니냐고? 네 눈엔 내가 뭐로 보이길래 그런 질문을 한단 말이지?”
하하, 역시 괜한 걱정이었어. 나의 의도와 작은 염려가 무색하게도 내가 건넨 말은 민들레에게 반가운 인사조차 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 눈에도 네가 민들레로 보여. 내가 괜한 질문을 했구나. 그리고 네 말대로 나는 여기에 처음 온 이방인이야, 그것도 방금 막. 그래서 말인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니? 내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아니면 방법을 알 만한 존재가 누구 없을까?”
“흠, 그래도 방금 질문은 좀 마음에 드네. 여기는 정원이야. 이곳 전체가 말이지. 네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나는 몰라. 그걸 알 만한 건 정원의 주인 뿐이야. 그분이라면 네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왜 왔는지까지도 아실 테지.”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분을 만날 수 있니?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아?”
“알다마다! 그분은 아주 높은 절벽 위에 있는 궁성에 계시지. 내가 바로 그 절벽 위 궁성 근처 풀밭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정원 여기 저기 흩어진 꽃씨들 중 하나거든.”
“어디로 가야 하는지라도 좀 알려줄 수 있을까?”
“좋아,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알려줄게. 대신에 나를 데리고 가야 해.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야. 그냥 좀 따분하기도 하고, 돌아가서 정원의 주인께 인사도 드리면 좋잖아? 뭘 망설이고 있어? 내 도움이 아니면 한참을 헤매야 할 텐데? 이제 제일 먼저 할 일을 말해주지. 나를 옮겨 심을 작은 화분을 구해오는 거야, 얼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