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 and 'temptation'
한글 성경에서 '시험'은 'test'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temptation'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의아했습니다. 충분히 '시험'과 '유혹'으로 구분해 번역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지 않았던 것인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질문이 으레 그렇듯이 이 궁금증 역시 금방 해소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습니다.
또 으레 그렇듯이 이 궁금증은 급작스럽게 해소되었는데요, 지난 3월에 제게 일어난 일을 통해서였습니다. 저는 올해 1월 한 NGO에 입사해 일하고 있습니다. 맡은 일 중에는 작년 사업에 대한 결과 보고가 있었는데요, 사업의 기획 의도, 진행 과정 등 맥락을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결과 보고와 관련된 공문과 가이드북을 세심히, 여러 번 읽으며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저는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결과를 보고해야 했던 사업은 다른 기관으로부터 배분 받은 돈을 다시 배분하는 사업이었고, 사업 종료 기한까지 사용하고 남은 사업비는 돌려받고 또 반환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업비 잔액 반납 기한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업 결과 보고는 사업 종료 후 한 달 이내에 하면 되었는데, 저는 사업비 반환도 이 기간에 맞추면 될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업비 반환 기한은 사업 종료 후 2주 이내였습니다. 제가 결과 보고 관련 공문과 가이드북을 세심히, 여러 번 읽었다고 했지요? 하하, 당구장 표시로 강조되어 있는 그 내용을 본 건 정확히 사업 종료 후 2주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참, 사람 일이 그렇습니다. 기한 내 알게 된 건 불행 중 다행이긴 했지만 충분히 다행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돈을 뚝딱 보낼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의 처리가 제 손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저는 선임께 상황을 설명 드리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봤습니다. 그분은 잠시 고민하다가 제게 다른 기관들로부터 사업비를 늦게 돌려받아 우리도 반환이 늦어지게 되었다고 설명하면 되지 않겠냐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 이 글을 쓸 수 있는 건 당시 제 실수로 인한 일이라며 그 제안을 뿌리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시에 제 머릿속에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솔직히 책임지는 장교가 되자'고 다짐했던 과거 군 복무 시절이 스쳤습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실수가 있었고, 이제는 솔직히 책임을 져야 할 때임을 직감한 저는 곧 수화기를 들고 결과 보고를 해야 하는 기관의 담당자 분께 연락을 드려 자초지종을 말씀드렸습니다.
"아, 그거 작년까지는 사업 종료하고 2주 이내였는데 올해부터 사업 종료 후 한 달 이내로 바뀌었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 대답을 듣고 저는 정말 기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제게 찾아오는 생각은 '하나님께 정직함을 시험 당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정직하게 말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황은 해결되었을지 몰라도 나는 너무 부끄럽고 자괴감이 들었을 거야'하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제 마음이었지만 실로 간사한 마음과 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말했음에도 상황은 원만히 해결되지 않았을 수 있고, 심지어 그랬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그 상황이 원만히 해결된 데에 하나님의 개입이 있었다고 믿는다면 해야 할 것은 감사와 찬양이지, 뒤늦게 능력이 많으신 분께 시험 들었다고 여김이 아닐 것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이성적으로 돌아보고 정리해 글로 적을 수도 있지만, 사건이 있고 한 2주 동안 스스로 여기길 저는 하나님께 정직을 시험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제게 변화가 찾아온 건 사건이 있고 2주가 된 주일 예배 때였습니다. 평소랑 달리 앞이 아니라 뒤에 앉아 예배를 드리던 날이었는데, 설교 후 찬양을 부르던 때부터 알 수 없이 제 마음에 메아리 치듯 커지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음보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정직을 시험하신 게 아니라, 제가 시험에 들었던 또는 제가 유혹 앞에 섰던 그때 정직할 수 있도록 마음과 입술을 지켜주셨음을 느끼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게 제게 큰 깨달음이었던 것은 하나님을 단지 '상황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서만이 아니라 '상황에 관계 없이 마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늘 제 인생에 동행하고 계신다는 걸 깊이 신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아, 처음에 제가 갖고 있던 궁금증과 연관 지어볼 차례입니다. 실제로 제가 한 사건을 두고 '시험'이라고 여겼다가 '유혹'으로 고쳐 보게 된 것처럼 명확히 구분 지어지지 않은 채 발생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께 '우리를 시험에 들도록 두지 않으시길' 바라는 것처럼, 주께서는 우리가 마주하는 일들에 대해 분별력을 갖추길 바라고 계시지 않으실까요? 그렇게 생각해볼 수 있다면,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을 했다는 사람도 있다지마는, 번역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도, 또 한글 성경의 '시험'이 잘된 번역이라는 것도 일리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