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
[0109] 붉은 숲 / 조용미
가끔 옥룡사터 동백숲 헤매는 꿈을 꾼다
손에 얹어 온 동백잎을 들여다 본다
나는 자주 나뭇잎이나 꽃잎 한장에서
내 운명을 읽어내려는 버릇이 있는 사람,
옥룡사터에는 탑도 부도비도 깨어진 부처도 없다
다만 수천 그루 동백이
탑과 부도비를 대신해 백계산을 뒤덮고 있을 뿐
동백 보려면 옥룡사를 찾지 마라 도선을 불러내지도 마라
심장을 꺼내어 보면 된다
나는 동백잎에 이 말을 새겨두고 내려왔다
동백숲은 어둡고 붉고 소란하다
벌들 잉잉거린다
바람은 붉은 꽃잎 갈피마다 깊숙이 스며든다
동백숲은 합장한 무덤을 심장처럼 품고 있다
심장 위에 누가 동백의 목을 부러뜨려 놓았다
동백숲의 한가운데는
죽음으로 뻥 뚫여 있다
동백나무 아래 조릿대들이 쓰러져 있다
동백 아닌 것들은 하얗게 말려가며
붉은 숲을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