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그대로였다

폭설이 내리던 어느 날

by 권휘석

인간은 참 간사하다.


117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 새하얀 눈이 밤새 무심히 내려앉았다. 출근길은 전쟁터 같았다. 여기저기 자동차 헛바퀴 도는 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주저 없이 운전을 포기하고 지하철을 선택했다.


나뭇가지마다 쌓인 눈은 무게를 견디다 못해 언제 떨어질지 모를 위태로운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이란다. 땅은 슬러시와 얼음이 기괴한 춤을 추듯 질척이고, 걸음걸음마다 길은 또 어찌나 미끄럽던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을 몸소 체감할 수 있었다.


겨우겨우 지하철 플랫폼에 들어섰다. 어느새 신발은 물에 젖어 축축하고, 양말마저 차가운 찝찝함으로 가득 찼다. 언제나 그렇듯 직장인에게 눈은 성가신 먼지, 일상의 방해꾼일 뿐이었다.


지하철을 타려는 그때, 회사 단체 대화방 읽지 않은 채팅 하나가 내 마음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셔틀버스 운행 불가로 금일 임시 휴무’


새벽 5시, 고요한 시간에 내려졌던 그 공지는 뜻밖의 행운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금 전만 해도 무겁던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위협적으로만 보이던 나뭇가지 사이로 핀 눈꽃은 이제 놀랍도록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잠시 멈춰 휴대전화를 꺼내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고 싶은 여유까지 피어났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은가. 부유하고 또 부유하다.



2024년 11월 28일

폭설이 내리던 날 아침 출근길